가상현실(VR)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기기인 ‘오큘러스 리프트’를 쓰자 눈앞에 국보 제24호인 석굴암 내부가 펼쳐졌다. 돌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 손을 뻗으면 본존불상의 무릎을 당장이라도 만질 수 있을 것 같다. 석굴암을 가상현실로 제작한 김주철 인디고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경주 석굴암의 돌을 직접 스캔해 만들었으니 진짜와 똑같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석굴암 안에는 그동안 미처 몰랐던 조각상이 꽤 많다. 이번엔 불상 뒤편으로 가봤다. 석굴암 불상의 뒤태를 본 건 처음이다. 등을 타고 흐르는 곡선이 곱다. 김 대표는 “초고화질(UHD) 수준의 해상도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 석굴암 본존불상 뒤태도 관람
석굴암 가상현실 체험은 8월 21일 시작되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처음 공개된다. 보존을 위해 유리창으로 접근을 막아 놓은 경주 석굴암과 달리 가상현실에서는 본존불상 주변을 돌아다니며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엑스포 기간에는 가상현실 이동장비 ‘옴니’를 설치해 사용자가 석굴암 내부를 자유롭게 걸어 다니며 관람할 수 있다.
가상현실을 십분 활용해 게임 기능도 추가했다. 본존불상 이마에 박힌 보석을 석굴암 한쪽 구석에 숨겨 놔 사용자가 관람하다가 직접 찾게 하는 식이다. 보석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는 순간 동해에서 해가 떠올라 불상을 비춘다.
엑스포 조직위원회는 석굴암을 시작으로 향후 신라시대 유적, 이스탄불 성소피아성당,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등을 가상현실로 제작할 예정이다. 박진호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멀리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실제와 똑같이 복원된 디지털 문화재를 집 안에서 가상현실로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새가 돼 하늘 훨훨 날기도
올해 1월 미국 선댄스영화제에는 가상현실 영화 ‘버들리(Birdly)’가 주목을 받았다. 관람객들은 높이 1m인 움직이는 기계 장치에 수평으로 엎드려 하늘을 나는 포즈를 취한 뒤 오큘러스 리프트를 쓰고 가상의 비행 영상을 관람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람객들은 마치 새가 돼 하늘을 훨훨 나는 것처럼 느꼈다.
이전에도 가상현실 비행 시뮬레이터는 많이 개발됐지만 버들리는 유독 관람객들의 호응을 많이 얻었다. 사용자가 진짜 새가 된 것처럼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버들리는 복잡한 기계 조종법을 익힐 필요 없이 30초면 직관적으로 비행 동작을 익힐 수 있다. 새처럼 양팔을 퍼덕이면 떠오르고,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면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버들리를 개발한 막스 라이너 스위스 취리히예술대 교수는 지난달 말 ‘CT 포럼’ 참석 당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가장 익숙한 공간인 도시를 배경으로 지상 10m에서 날고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영상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 테러 현장 한복판에서 뉴스 체험
최근에는 가상현실 저널리즘도 등장했다. 미국의 가상현실 기업 엠블매틱그룹은 이 개념을 처음 도입해 최근 다양한 콘텐츠를 공개했다. 시리아 주택가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를 다룬 ‘프로젝트 시리아’는 시청자들을 테러 현장 한복판으로 데려간다. 테러 현장의 모습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가상현실로 만든 뒤 여기에 당시 찍었던 영상과 소리를 입혔다. 가상과 현실을 섞은 것이다. 이를 경험한 시청자는 기존 뉴스를 접할 때보다 훨씬 더 감정적으로 사건에 몰입하게 된다.
서동일 전 오큘러스 한국지사 지사장은 “‘킬러 콘텐츠’를 먼저 확보하는 쪽이 가상현실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며 “정면승부는 가상현실 기기보다는 콘텐츠 시장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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