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방경찰청 장재이 경장(29)은 요즘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 SNS에서 부산 경찰 홍보를 잘한 공로로 지난해 정기승진에 이어 올 6월말 또 한 차례 승진한 다음부터다. 다행히도 악플엔 대개 이런 반론들이 따라 붙는다. “일선에서 고생하는 경찰들을 제대로 홍보해 신뢰를 얻은 점은 생각 안하나.”
맞는 말이다. 부산 경찰은 SNS에서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페이스북 ‘좋아요’가 20만 명, 카카오스토리 구독자 수 15만명, 트위터 팔로워가 3만4000명이다. 지난 연말엔 한국인터넷소통협회가 주관하는 ‘2014 대한민국 소셜미디어대상’ 공공기관부문대상, 한국소셜콘텐츠진흥협회가 주최하는 ‘제4회 대한민국 SNS대상’ 공공기관부문 대상, 한국광고PR실학회가 주는 ‘올해의 광고상’ 스마트광고상을 받았다.
1일 ‘여경의 날’을 맞아 ‘우수 여경’ 장 경장에게 ‘약 빨고 하는 듯한’ 홍보 비법을 물었다.
① 자기자랑은 금물…웃기거나 울리거나
공공 기관 홍보 담당의 주요 업무는 기관장의 동정이나 ‘치적’을 알리는 일. 그러나 부산경찰청 SNS의 경우 청장 사진이 올라오는 경우는 1년에 1, 2회. 그것도 ‘망가진’ 모습일 때다. 시간 때우려고, 아무 생각 없이 웃으려고 들어오는 SNS에서 ‘자랑 질’은 금물. 웃기거나, 감동적인 얘기가 좋다. 온갖 사연들이 몰려드는 경찰서는 콘텐츠의 보고다.
“아침에 출근하면 간밤에 들어온 사건사고 보고서와, 간부회의 결과 자료와, 일선 파출소나 경찰서에서 메일이나 카톡으로 보내온 사건 뒷얘기를 쭉 훑어요. 이중 얘기 되는 홍보거리를 재미있게 소개하는 거죠.”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덕분인지 장 경장의 예사롭지 않은 소개 글은 신선한 이야기 재료에 감칠맛을 더한다.
“감자 캐다 산삼 건짐”. 신호 위반 차량을 쫓았는데 알고 보니 운전자가 마약 사범이었다는 이야기다.
만취한 형제가 경찰차를 얻어 타고 집에 가려고 메르스에 걸린 것 같다며 허위 신고해 검거된 소식을 전할 땐 이런 소개 글을 달았다. “아재들요, 쫌!”
지난달 전국의 주요 언론에 소개된 한 장의 사진도 부산경찰청의 SNS 홍보에서 시작됐다. 생후 2개월인 아이를 안고 민원 하러 남포지구대를 찾은 남자. 아기가 울자 초짜 아빠는 어쩔 줄 모르고, 육아 경험이 있는 경장이 아이를 대신 안아 젖병을 물린 모습을 놓치지 않고 찍어둔 사진이었다.
장 경장은 사진을 업로드하며 이런 카피를 날렸다. “젖병을 든 남자의 팔뚝이 이렇게나 멋질 수가!”
② 과장했다간 스팸 광고 짝 나요
만날 한가하게 재밌는 드립만 칠순 없다. 가끔은 “부산 경찰, 살아 있네!” 소리가 나오게 일도 잘하고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 단, 가끔씩 그리고 은근히.
“범인 검거하느라 일선에선 억수로 고생하거든요. 그런데 조금이라도 과장하거나, 많이 꾸미거나 하면 스팸 광고 같아서 역효과 나요. ‘칭찬해주세요’ 하고 강요해도 안 되고요. 사진과 영상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해요.”
늦은 밤 차들이 쌩쌩 달리는 위험천만한 자동차 전용도로의 중앙분리대에서 가출한 치매 환자 할머니를 업고 도로를 무사히 건너려는 교통경찰, 학교 폭력의 피해자 여학생이 자신을 친동생처럼 돌봐주던 여경에게 보내온 100점짜리 수학 시험지 사진. 사실관계를 설명하는 문장 이상의 꾸밈이 없어도 이 장면들만으로 충분히 감동적이다.
③ ‘부산 사투리’ ‘경찰’은 먹히는 코드
서울 경찰도 이렇게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형사와 부산 사투리는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먹히는 인기 코드다. 이 코드를 십분 활용한 콘텐츠가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 ‘부산 사나이’와 가정폭력 예방 캠페인 영상 ‘사랑한데이’다.
‘부산 사나이’는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 같은 조폭 영화를 패러디한 영상물. 조폭 혹은 꽃남 계열 형사 7명이 중학교 강당에서 학생들과 닭싸움하고, 호신술을 지도하며 어울리는 행사를 4분27초짜리 경쾌한 영상물로 만들었다.
조폭 같이 생긴 형사는 “힘을 우째 쓰야하는지 알리주께” 하며 겁주고, 꽃남 형사는 여학생들을 겨냥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믄 오빠야가 데이트해주께” 하고 달콤하게 속삭인다.
‘사랑한데이’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부산 경찰들이 아내, 어머니, 애인에게 전화로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물. 무뚝뚝한 부산 사내들이 홍보팀의 요청에 못 이겨 어렵게 입을 뗀다. “여보 사랑해.” “엄마 사랑해요.” 수화기 너머 반응도 부산 싸나이들 못지않다. “뭐라노.” “끊어라 바쁘다,” “미칫나, 약 잘못 묵었나.”
④ 내 안에 끼 있다
SNS에서 홍보를 하려면 영상물은 필수다. 웹툰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 부산경찰청은 제작 인력을 모두 내부에서 충당한다. SNS 홍보는 경찰청의 홍보담당관실에서 한다. 장 경장이 SNS를 관리하고, 영상은 강대민 경사, 웹툰은 박은정 경장이 주로 그린다. 사진 담당은 김록수 경사다.
홍보 영상에 필요한 배우도 내부에서 캐스팅한다. 장 경장이 오글거리는 분장을 하고 직접 출연할 때도 있다.
‘부산 사나이’도 내부 캐스팅으로 찍었다. “영상을 찍어서 보내 달라 했어요. 그중에 7명을 캐스팅했죠. 조폭 분위기 나는 경찰은 많은데, 꽃남 경찰이 없어서 찾다찾다 결국 의경 중에서 캐스팅했어요.”
이 꽃남 의경이 올 봄 케이블 채널 엠넷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꽃남 가수 ‘남포동 꽃경찰’이다. 그는 학교폭력 예방 홍보를 위해 이 프로그램에 출연, 미모에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⑤ 팀장님이 이해 몬해도 패쓰!
기발한 아이디어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나오는 법. 홍보담당관 직원들은 커피를 마시며 “이거 어떻노” “저거 어떻노” 하며 수다를 떨다 아이디어를 건진다.
“팀장님(정태운 경감)이 팀원들을 믿고 일을 맡기세요. 내부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디어가 죽지 않죠. SNS에서 쓰는 은어는 팀장님이 모르실 수도 있는데 한번도 ‘이거 이해 안 된다. 알기 쉽게 고쳐라’ 하시지 않아요. ‘이거 요즘 재밌는 거야? 그럼 해봐’ 하시죠. 그래서 SNS스러운, 공공기관 냄새가 나지 않는 홍보물을 만들 수 있는 거죠.”
⑥ 최고의 홍보거리는 바로…
‘SNS 대모’로 불리는 장 경장은 검도 3단의 유단자다. 장 경장은 지구대 파출소 경찰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평생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며 2011년 경찰이 됐다. 조폭 일당을 일망타진하는 박력 있는 형사도 좋지만, 소소한 동네 민원을 해결해주며 의지가 되는 경찰의 삶은 더욱 감동적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휴대전화의 단축번호가 1번 첫째아들부터 둘째 셋째로 이어지다 6번 파출소로 끝났다. 경찰은 누군가에겐 자식처럼 의지하고 기억해야 할 존재인 것이다.
“홍보거리를 찾느라 사건 보고서를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페북 좋아요 숫자가 늘어나는 것도 좋지만, 학교폭력 전담 경찰로 일할 때 상담해줬던 학생들이 가끔 연락해올 때 진짜 기분이 좋아요. 언젠가는 복귀해야죠. 일선 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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