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이혼한 중학생 A 군(15)은 지난해 1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부모와 대화가 거의 없었고, 친구도 적었던 A 군에게 여자친구는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었다. A 군은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다고 아버지에게 털어놓았지만 아버지는 귀담아듣지 않았고, 위로 대신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다’란 식의 반응만 보였다.
낙담한 A 군은 며칠 뒤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를 새벽에 친구에게 보냈다. 문자메시지를 받고 불길한 느낌을 받은 친구가 곧장 A 군의 어머니에게 이를 알렸다. A 군의 어머니는 경찰에 신고했고, 아들이 사는 아파트로 향했지만 A 군은 이미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였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자살의 상당수는 부모의 관심만 있으면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부모와 자녀 간의 접촉이 적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부모 가정에서 청소년 자살률이 더 높은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림대 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가구에서 한부모 가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9.4%(통계청 자료 기준)였지만 자살 중고교생의 31.5%가 한부모 가정에서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현주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주기적으로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건 기본이고, 자살 징후 파악 요령, 정신과 치료에 대한 열린 태도, 자살은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라고 자녀에게 설명하는 습관 등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초기 자살 징후를 파악하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청소년 자살에서 고위험군에 속하는 이들은 이미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이 있는 아이들. 이들은 자살을 계속해서 시도하며 방법 역시 횟수를 거듭할수록 더 극단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평소 특별한 문제가 없던 아이들의 경우도 부모가 봐서 유독 우울한 상태가 지속된다고 판단될 땐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야 한다. 부모가 먼저 대화를 시도하고, 전문가 상담 등을 알아보라는 뜻이다. 홍 교수는 “최근에는 아이와 부모 모두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상담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됐다”며 “이런 프로그램을 활용할 경우 비교적 쉽게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B 양(16)의 경우 지난해 초등학교 1, 4학년과 중고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약 3%에게서 나타나는 ‘자살 위험 징후’가 있다고 파악됐다. 해당 결과를 통보받은 담임교사는 B 양과 수차례 상담을 했고, 불안감과 우울감이 크게 느껴진다는 평가를 내렸다. B 양은 결국 부모와 함께 병원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처음 B 양의 부모는 ‘원래 우리 딸은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상담 과정에서 B 양은 칼로 손목을 자해하는 상황을 상상하고, 스스로 목을 졸라 본 경험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B 양의 부모는 딸의 이야기를 들은 뒤 ‘앞으로 더 많은 대화를 하자’며 다독이고 상담 치료도 함께 받았다. 6개월 뒤 B 양은 우울증 완치 판정을 받았고 현재는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부모가 자녀의 자살 징후를 느낄 땐 대화에서 자살을 직접 언급하는 것도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자살에 대해 돌려 말했을 때 오히려 자녀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
홍창형 아주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정서적 교감을 나누면서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주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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