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끔하더니 손가락에 피가 조금 났어요. 벌에게 쏘인 것처럼 욱신거리기도 했고, 마비 증상도 느꼈습니다.”
경기 평택시에 사는 김모 씨(38)는 지난달 10일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 협재해수욕장을 찾았다가 문어에게 물렸다. 하늘색 바다로 유명한 제주 북서부의 협재해수욕장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 중 한 군데다.
김 씨는 해수욕장 인근 갯바위에서 ‘갯바위 체험행사’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이 행사에 참가해 고둥과 게 등을 잡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지름 5cm 정도의 작은 문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김 씨는 새끼 문어로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손바닥에 문어를 올려놨다. 그 순간 문어가 김 씨를 물었다. 김 씨는 “119에 연락해 응급처치를 했지만 손뼈가 시릴 정도의 극심한 고통과 어지럼증이 계속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문어에게 물린 지 열흘이 지났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 씨는 인터넷을 뒤져 국립수산과학원 고준철 박사(아열대수산연구센터)를 찾아냈다. 고 박사는 “김 씨는 화려한 무늬를 가진 문어에게 물렸다고 얘기했다”면서 “파란고리문어에게 물린 것 같아 바로 국내 독성 전문의에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알려줬다”고 말했다. 파란고리문어는 다 자라도 탁구공만 한 크기로 적갈색 바탕에 이름처럼 파란 고리무늬를 갖고 있다. 김 씨는 다행히 현재 손가락 허물만 벗겨진 정도로 거의 완치된 상태다.
탁구공 크기 ‘파란고리문어’ 독 1mg이 치사량
몸에 독을 지닌 맹독성 해양 생물이 한국 해수욕장 피서객을 위협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의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잦아진 사례다.
파란고리문어는 원래 호주와 미국 캘리포니아, 필리핀 등 아열대 해역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한반도 해역까지 서식지를 넓혔다. 고 박사는 “수온이 올라가면서 파란고리문어가 서식할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 한반도 해역까지 올라왔다”면서 “파란고리문어는 우리 바다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파란고리문어는 2012년 제주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매년 제주 해역에서는 파란고리문어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 파란고리문어가 처음 발견된 것은 5월 10일. 레저 활동을 하려던 한 시민이 제주 북부의 삼양해수욕장 인근에서 문어를 발견하고 아열대수산연구센터에 신고했다. 당시 신고자는 “호미로 문어 머리를 누르자 파란빛을 반짝이며 경계 태세를 보였다”면서 “파란고리문어라고 판단해 피신했다”고 밝혔다.
국내에 파란고리문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들은 호주의 한 교민은 아열대수산연구센터에 전화를 걸어 “호주 연안에서는 맹독 문어에게 물리는 사고가 잦아 지역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국내 사고의 예방을 당부하기도 했다.
실제로 파란고리문어의 독은 복어 독과 같은 테트로도톡신 계통의 맹독이다. 문어 독에 노출되면 신체 마비와 구토, 호흡곤란, 심장마비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심하면 사망할 수 있다. 1mg에 불과한 독이 치사량이다. 또 파란고리문어가 새우나 게, 작은 어류 등 먹이를 사냥할 때 뿜는 먹물에도 독이 들어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파란고리문어는 지난해 제주를 넘어 동해안인 경북 울진까지 북상했다. 고 박사는 “주로 수심 5∼10m에서 출몰하지만 성인 무릎 높이 정도 되는 해수욕장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박사는 “제주 바다는 아열대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독성 문어뿐 아니라 독을 가지고 있는 생물이 언제든지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화려한 형태나 색상을 지닌 문어류, 물고기류, 해파리류 등은 독성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절대 맨손으로 만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해파리는 안 부딪치는 게 사고 예방 1원칙
해파리는 몇 년 전부터 해수욕장의 대표적인 불청객이 됐다. 해파리 중에서도 노무라입깃해파리, 커튼원양해파리, 야광원양해파리, 유령해파리, 작은부레관해파리, 입방해파리 등은 독을 가진 독성 해파리다.
독성 해파리에게 쏘이면 상처와 통증이 생기고 심할 경우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다. 실제로 2012년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기던 여자 어린이가 해파리에게 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당시 여자아이의 사망 원인이 노무라입깃해파리의 독 때문인 것으로 추정했다. 독성 전문가인 김의경 경상대 수의학과 교수는 “노무라입깃해파리는 독성 해파리 중에서는 독성이 중간 정도로 맹독성은 아니지만 꽤 강하다”고 말했다.
노무라입깃해파리는 한반도 해역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해파리 중 하나다. 동해, 서해, 남해를 가리지 않고 전체 해역에 출몰하고 있다. 갓 지름이 2m, 무게는 150∼200kg 정도로 해파리 중에서도 큰 몸집을 가졌다. 동중국해에서 번식한 뒤 해류를 타고 국내 바다로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원득 국립수산과학원 박사는 “노무라입깃해파리의 개체 수는 매년 변동이 심한 편”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노무라입깃해파리 개체 수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5월 14일∼6월 2일 국립수산과학원이 황해와 동중국해 44개 지점을 조사한 결과 노무라입깃해파리가 작년보다 많이 발견됐다.
작은부레관해파리나 입방해파리도 해수욕장에 자주 출몰한다. 이 두 종은 독성 해파리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독성을 지녔다. 작은부레관해파리는 몸집이 5∼15cm로 작고 삼각형의 공기주머니가 푸른빛을 띤다. 바다에서는 비닐봉지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쉬워 비닐봉지로 오인해 만졌다가 쏘이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입방해파리는 작은 박스 모양의 머리를 가졌고, 몸집이 3cm 정도로 해파리 중에서도 가장 작은 축에 속한다. 색이 투명해 바다에서는 사람 눈에 쉽게 띄지 않아 쏘이기 쉽다. 지금까지 입방해파리는 제주와 남해안, 동해에서 발견됐다.
독성이 약한 보름달물해파리도 국내 해수욕장에서 자주 발견된다. 지름 15cm 정도의 편평한 접시처럼 생긴 게 특징이다. 김 교수는 “보름달물해파리에게 쏘이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해파리가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생물은 아닌 만큼 해파리와 접촉하지 않는 게 사고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해파리가 해류를 따라 지나가거나 유영을 하는 도중에 사람과 접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물놀이를 할 때 주위를 잘 살펴 해파리와 닿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만일 해파리에게 쏘였다면 바닷물로 상처 부위를 씻어낸 뒤 신용카드 등으로 피부에 남아 있는 해파리 촉수를 제거하는 응급처치를 하는 게 중요하다.
스쿠버다이버는 청자고둥 조심해야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청자고둥도 조심해야 한다. 청자고둥은 꽈배기를 틀고 있는 원뿔모양 백색 껍데기에 알록달록한 갈색 무늬를 가진 종류가 가장 유명하다. 수심이나 해역에 따라 무늬와 색은 다양하다. 장식용으로 써도 될 만큼 예쁜 껍데기 때문에 손이 가기 쉽지만 이 아름다움 이면에는 무시무시한 독침을 품고 있다.
평소 청자고둥은 독침을 몸속에 숨기고 있다가 먹이가 올 때만 독침을 꺼낸다. 청자고둥의 독침을 맞은 먹이는 몸이 마비돼 움직일 수 없다. 독침은 바다 밑 모래 바닥이나 자갈 바닥을 느릿느릿 기어 다니는 청자고둥이 생존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먹이를 잡을 수 있도록 진화를 통해 얻은 무기다.
청자고둥 중에서도 물고기를 잡아먹는 종은 ‘글라콘트리판-엠’이라는 독을 지니고 있는데 이 독은 독성이 매우 강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자고둥의 강한 독을 약으로 바꾼 경우도 있다. 청자고둥의 독은 신경전달계를 마비시키는 신경독이기 때문에 환자의 고통을 가라앉히는 진통제로 활용할 수 있다. 청자고둥에서 분리한 코노톡신 펩타이드의 한 종류로 만든 지코노타이드의 경우 모르핀보다 수천 배나 강한 진통 효과가 있어 ‘프리알트’라는 이름의 진통제로 판매되고 있다.
고 박사는 “문섬, 범섬, 섶섬 등 제주 남부의 섬 근처 해역 깊은 곳에서 청자고둥을 볼 수 있다”면서 “호주 같은 열대 해역에서는 5m 이하의 해수욕장에서도 발견되지만 국내에서는 스쿠버다이버 등 깊은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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