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2학년인 김모 양(17)은 지난해부터 크게 달라졌다. 상위권이던 성적은 중하위권으로 떨어졌고, 친구들과도 거의 어울리지 않는다. 학교에 와서도 멍하게 앉아 있거나, 엎드려서 잠을 잘 때도 많았다.
김 양이 이렇게 변한 이유는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고 어머니가 위암으로 투병 중인 상황에서 자신의 미래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붙어도 등록금을 내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날 김 양은 한강의 한 다리로 향했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김 양에게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SOS 생명의 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도 모르게 수화기를 든 김 양은 긴 시간 대화를 나눴고 상담원으로부터 “지금 씩씩하게 산다면 그에 대한 보답이 있다”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동생도 생각해 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한 자살 예방 교육과 상담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청소년 자살이 많다는 뜻이지만 적절한 교육과 상담을 통한 자살 예방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홍현주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청소년 자살은 가족과 교사 등 주변인들의 적극적인 관찰과 각종 교육 및 상담 프로그램으로 상당 부분 예방이 가능하다”며 “부모와 교사들부터 청소년 자살 방지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다양한 청소년 자살 방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단체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서울 9개 중학교 학생 2715명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 교육을 진행했다. 또 7개 중학교를 대상으로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열었다. 가장 주목받았던 자살 예방 프로그램은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는 청소년 1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20회의 연극심리 상담. 청소년들이 감정 발산과 자아 표현을 통해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도록 하는 것이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관계자는 “자살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인 만큼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예방 프로그램을 더 많이 진행하고 그 대상자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지역 교육청과 보건소 등을 통해 청소년 자살 예방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 중에는 청소년 상담 경험이 풍부한 전현직 중고교 교사들이 강사나 상담자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한편 자살 예방 관련 내용을 정규 교육과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의 많은 주들이 중고교 필수과목으로 도입하고 있는 ‘보건 교육’의 경우 청소년 자살의 원인, 문제점, 예방법 등을 비중 있게 다룬다.
홍 교수는 “한국 학생들의 높은 스트레스 수준을 감안할 때 청소년 자살, 나아가 정신건강 전반에 대한 교육을 지금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학교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다양한 교육과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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