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식사시간까지 아껴 18개월 연구… 100.000% 준비가 우승 비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3일 03시 00분


세계재난대응로봇대회 1등 이끈 오준호 KAIST 교수

《 2004년 가을 이 땅에 두 발로 걷는 로봇, 즉 휴머노이드가 처음 한국인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이미 일본의 아시모가 두 발로 걷고 뛰면서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을 때였다. 조금씩 세계 수준을 쫓아가던 이 로봇은 11년 만인 올해 6월 초 미국에서 열린 세계재난대응로봇대회(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RC)에서 마침내 1등을 차지한다. 바로 ‘휴보’다. 휴보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준호 KAIST 기계공학과 교수(61)를 만나 우승 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대뜸 “100.000% 완벽한 준비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휴보는 이번 대회에 DRC휴보2라는 이름으로 출전해 미국 일본 등에서 온 총 24개팀과 실력을 겨뤘다. 》

오준호 KAIST 교수가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세계 재난대응로봇대회에서 우승한 DRC휴보2(왼쪽) 옆에 서서 우승 비결을 설명하며 활짝 웃고 있다. 오른쪽 로봇은 초기 형태의 휴보로 대회에 나간 로봇과 비교해 키와 덩치가
훨씬 작다. 대전=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오준호 KAIST 교수가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세계 재난대응로봇대회에서 우승한 DRC휴보2(왼쪽) 옆에 서서 우승 비결을 설명하며 활짝 웃고 있다. 오른쪽 로봇은 초기 형태의 휴보로 대회에 나간 로봇과 비교해 키와 덩치가 훨씬 작다. 대전=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연구실 회식은 연말에 단 한 번

오 교수는 ‘엉덩이가 무거운 과학자’로 소문나 있다.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결코 포기하지도, 다른 데로 눈을 돌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의 강력한 무기는 시간이다. 투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을 연구에 쏟는다. 그는 “연구하는 시간이 아까워 외부에서 식사 약속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아마 내가 KAIST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교내에서 보내는 교수일 것”이라고 웃었다(기자도 이날 오 교수와 학교 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다니며 점심을 먹었다). 이런 습관은 연구실에 있는 대학원생들에게도 그대로 전수됐다.

“우리 연구실은 회식을 1년에 한 번 연말에만 합니다. 간혹 다같이 저녁 먹는 일이 있어도 8시면 다시 연구실에 올라오지요. 점심시간에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오후 1시쯤 가서 빨리 먹고 오고요. 실험실에서 짜장면 시켜먹는 것도 비일비재합니다.”

휴보를 앞세워 출전한 ‘팀 카이스트’는 2013년 열린 첫 대회에서는 16개팀 중 11위에 그쳤다. 본선 도중 갑자기 발목 모터가 고장 나는 등 악전고투했다. 일본 팀의 우승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켰던 KAIST 연구원들은 지난 1년 6개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변수를 모두 점검하며 이번 대회를 대비했다. 이번 대회 첫째 날에도 드릴이 부러지는 사고를 겪었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고 다음 날 순위를 역전시켰다. 무지막지한 연습의 힘이었다.

“우리 로봇이 세계 최고 기술을 구현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로봇의 구조와 동작을 안정시키고 오작동을 막는 일은 누구보다 공을 들였습니다. 사실 다른 팀도 연습 때는 잘했으니까 대회에 오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60∼70%의 성공률을 갖고 대회에 오면 다 쓰러질 수밖에 없어요. 결국 그동안 쏟은 시간이 우승을 안겨준 거죠. 공학은 100.000% 정직합니다.”


○ 휴보에 맞춤형 기술 적용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2012년 이 대회를 처음 열겠다고 발표했을 때 수많은 로봇공학자들이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대회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났다고 가정하고 로봇이 8개의 미션을 해결하도록 요구한다. 먼저 로봇이 △운전을 해서 사고 현장까지 들어가 차를 세우고 △스스로 차에서 내려야 한다. 이어 △문을 열고 오염된 실내로 들어간 다음 △밸브를 잠가야 한다. 다음엔 △전동공구를 들어 벽에 구멍을 내고 △깜짝 과제를 수행한 후 △잔해물을 돌파해 건물을 빠져나온다. 마지막으로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야 한다. 휴보는 8개의 과제를 44분 28초 만에 모두 완수했다.

“사실 이번 대회는 적당히 점수 따기로 접근하면 더 쉬워요. 못하는 과제 한두 개를 포기하면 나머지 과제는 생각보다 쉽거든요. 하지만 그러면 대회가 추구하는 도전(챌린지)이 아니죠. 8개 과제를 다 해내려다 보니 과감하게 모든 것을 버리고 바꿨어요. 아담했던 휴보의 키(125cm)도 168cm로 키우고 다리에 대용량 축전기를 달아 힘도 키웠죠.”

보이지 않는 비장의 무기도 있었다. 차에서 자연스럽게 뛰어내리는 기술, 즉 ‘수동 순응 제어(패시브 컴플라이언스 컨트롤)’라고 불리는 기술이다.

“차에서 내리려면 멈춘 자세로 있다가 점프를 해야 해요. 그런데 로봇은 이게 참 어려워요. 점프한다고 한쪽 발에만 힘을 주거나 손을 놓으면 대번 쓰러지거든요. 이 동작이 하도 안 되니까 차에 발판을 달아 편법으로 해결한 팀도 있어요. 우리가 사용한 것은 로봇이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맞춰 힘을 수동적으로 안배하는 기술이에요. 기술적으로 말하면 중력이나 마찰계수에 맞춰 미세하게 힘을 조절하는 거죠.”

오 교수는 이와 함께 앉았다 일어나면서 휴보가 두 발과 바퀴를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한 변신 기술을 가장 스마트한 기술로 꼽았다. 그러나 오 교수는 휴보가 세계 1등 로봇이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로봇들이 미션에 실패하며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짠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는 그는 “2등을 한 미국 로봇 아틀라스를 비롯해 출전한 모든 팀이 다 세계 최고”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2, 3등을 차지한 로봇은 8개의 미션을 모두 완수했으나 시간은 휴보가 가장 빨랐다.

○ 목표 위해서라면 독재자도 불사


오 교수는 대회 우승 직후 ‘독재자 리더십’으로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연구실의 한 학생 입에서 ‘독재자’라는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난감하기는 했다면서도 “리더는 독재자가 될 수밖에 없다.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국 리더의 책임이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KAIST 학생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에요. 다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죠. 전 바로잡아주려고 노력하지만 강압적으로 요구한 적은 없어요. 물론 학생들도 굽히지 않지만 저도 포기하지 않죠. 제 뚝심이 더 세니까 독재자라는 말이 나왔을 거예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제 얘기가 옳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과정에 2, 3년이 걸린 친구도 있었어요. 대회에 우승해서 그런지 한 달 전부터 제자들이 말을 잘 듣네요, 허허.”

그의 연구실을 ‘특공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사실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우승자를 가린 대회 2일 차에도 직접 가서 보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니터로 대회를 지켜봤다. 그는 “학생들이 나 때문에 로봇 조종하는 데 부담스러워 할까 봐 그랬다”며 “사실 영화도 아슬아슬한 장면이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고 털어놨다. 이번 대회 우승에 얽힌 사연과 휴보 개발 일대기는 25일 과학동아가 주최하는 과학강연회 ‘사이언스바캉스’에서 오 교수가 직접 공개할 예정이다.

○ 휴머노이드 연구에 철저한 몰입

오 교수가 휴보를 만들어야겠다고 처음 생각한 것은 2000년이었다. 일본의 아시모를 보고 떠오른 생각이었다. 실제로 뛰어든 것은 2002년이었지만 당시 정부가 휴머노이드 개발에 투자하지 않는 바람에 이리저리 연구비를 끌어와 간신히 로봇을 만들어야 했다. 2004년 우여곡절 끝에 산업자원부에서 연구비를 받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10년 동안 50억 원 정도를 투자받아 지금에 이르렀다. 한때 전시행정이라는 말도 들었고 왜 쓸 데도 없는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느냐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었다. 서글펐지만 그럴수록 발길은 연구실로 향했다.

“철저하게 몰입했죠. 지금도 학생들에게 48시간, 72시간 연구만 하라는 말을 해요. 그건 절대 시간을 뜻하는 말이 아니에요. 그만큼 몰입을 해야 자나 깨나 생각에 젖어서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거죠. 이번에 받은 상금 200만 달러(약 22억 원)도 연구비로 쓸 계획입니다.”

2000년대 들어 로봇을 개발할 생각을 했다지만 사실 오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못 말리는 ‘기계 마니아’였다. 고물상에서 전기 모터와 프로펠러를 구해 소형 모터보트를 만들고 집 옥상에서 로켓을 발사해 보다가 폭발사고를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공부는 엉망이었다. 고교 1학년 때 그는 반에서 64명 중 58등을 했다. 그는 “학교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2학년 수학시간에 미적분을 처음 배웠는데 이게 과학자가 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그는 방문을 닫아걸고 공부에 열중했다.

“고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서울대에 가라고 했어요. 하지만 전 기계공학만 공부하면 됐지 어느 대학이냐는 상관이 없었어요. 그래서 연세대 기계공학과로 진학했죠. 집에서 아주 가까웠거든요. 대학 생활은 너무 재미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궁금했던 고등수학이나 운동역학, 물리학 법칙 같은 것을 배울 수 있었거든요. 전 살면서 늘 해야만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주로 했어요. 휴보를 만든 것도 하고 싶은 일이었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로봇공학자는 로봇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영화 속 ‘터미네이터’는 정말 가능할까. 오 교수는 “로봇이 발전할 것은 분명하지만 앞으로 5년 안에 어떤 로봇이 나올지는 도저히 모르겠다”면서도 “청소로봇처럼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단순한 로봇이 먼저 각광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로봇을 영화 속 모습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돼요. 휴보가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죠. 요즘 유행하는 사물인터넷이라는 말처럼 모든 사물 안에 로봇의 기능이 많이 가미될 거예요. 냉장고가 로봇으로 바뀌는 셈이죠.”

대전=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세계재난대응로봇대회#1등#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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