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의술]한국 의사 최초 아프리카서 에볼라 치료… “감염병 중 ‘최고의 강적’과 사투 못 잊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0일 03시 00분


신형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센터장

한국 출신 의사로선 처음으로 아프리카 에볼라 치료 현장에서 활동한 신형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센터장은 “의사로서 가장 기억에 남고 강한 사명감을 느꼈던 현장이었지만 치사율이 높고 치료제가 없어 한계도 체감했다”고 소회를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한국 출신 의사로선 처음으로 아프리카 에볼라 치료 현장에서 활동한 신형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센터장은 “의사로서 가장 기억에 남고 강한 사명감을 느꼈던 현장이었지만 치사율이 높고 치료제가 없어 한계도 체감했다”고 소회를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심한 구토와 설사는 물론이고 출혈 증세까지 보이는 환자 병동에 들어설 땐 발이 안 떨어졌습니다. 나도 모르게 숨도 가빠졌고요.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죠.”

국내 대표적인 감염병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신형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센터장(51)은 지난해 12월 말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가더리치 에볼라 치료센터 병동에 들어섰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출신 의사로는 처음으로 에볼라 치료 현장에서 활동했다.

“어느 날 40대 여성 에볼라 환자를 진료했는데 배와 겨드랑이 부위에 옴이 생겼더라고요. 옴도 전염성이 강한 피부 질환이거든요. 그런데 환자가 갑자기 ‘고맙다’며 저를 껴안았어요. 보호복을 입고 있긴 했지만 당황했죠. 에볼라가 감염병인 데다가 치사율까지 높으니 환자를 만날 땐 언제나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죠.”

올해 1월 1일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있는 병원 내 복도에서 현지 의료진과 함께한 신형식 센터장(왼쪽). 신 센터장은 “전염력이 강한 전염병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신형식 센터장 제공
올해 1월 1일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있는 병원 내 복도에서 현지 의료진과 함께한 신형식 센터장(왼쪽). 신 센터장은 “전염력이 강한 전염병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신형식 센터장 제공
신 센터장은 20여 년간 에이즈 환자를 돌보았다. 에이즈 환자들이 폐렴 증세를 보일 때 폐렴 치료제와 항바이러스제를 동시에 투약하는 치료법을 2006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시도하기도 했다. 또 이번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는 40명의 메르스 환자를 치료했다. 중증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끈적거림이 심한 가래를 호흡기내과 의사들과 함께 내시경을 이용해 제거하는 치료법을 시도해 상태를 크게 개선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감염병과 관련해 풍부한 경험이 있는 신 센터장이지만 에볼라에 대해서는 다른 감염병과는 다른 평가를 내렸다. 신 센터장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감염병 중 ‘최고의 강적’은 단연 에볼라였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로서 가장 기억에 남고 강한 사명감을 느꼈던 현장이었지만, 동시에 치사율이 50%나 되고, 치료제가 없어 한계를 체감했다”고 털어놓았다.

에볼라는 현재 치료제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 증세에 따라 필요한 치료제를 집중적으로 투입해 상태를 개선시키는 방식의 ‘대증 치료’를 한다. 이를 통해 환자의 면역체계가 바이러스를 이겨 내게 하는 게 유일한 치료법이다. ‘2014년 아프리카 에볼라 유행’ 때 의료진은 비록 에볼라를 이겨 내진 못했지만 좀 더 효과적인 대응법을 찾아내는 등 성과가 있었다.

신 센터장은 “완치자 혈장을 이용한 치료가 주목받았는데 중증 환자보다 초기 환자에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게 어느 정도 확실히 증명됐다”며 “추후 에볼라가 유행한다면 지금보다 효과적인 혈장 치료 방식 등이 개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염병 전문가로서 신 센터장이 가장 강조하는 건 역시 예방이다. 글로벌 시대에 신종 감염병에서 예외인 나라는 없다는 것. 에볼라도 시간문제일 뿐 언젠가는 국내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에도 아프리카 기니를 방문했던 50대 남성 중 한 명이 입국 과정에서 에볼라 의심 증세를 보여 관련 검사가 진행됐고 최종적으로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

신 센터장은 “언제든지 신종 감염병에 노출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일단 손 씻기, 기침 및 재채기 예절 지키기, 균형 있는 식사(면역력 유지에 중요), 해외여행 시 동식물 접촉 자제와 같은 기본 원칙에 충실하라”며 “적극적으로 예방접종을 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가장 일반적인 감염병 예방접종 중 하나인 독감 예방접종은 통상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해외여행과 해외발 신종 감염병 유행이 잦은 상황에서는 건강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독감 예방접종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신 센터장은 “호흡기 관련 신종 감염병 중에는 독감과 증상이 비슷한 게 많기 때문에 독감 예방접종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해외를 다녀온 뒤 기침, 재채기, 발열 등 호흡기 관련 감염병 증세가 나타날 땐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안 내 문 손잡이와 자주 만진 물건(리모컨 등)을 소독하는 게 좋다”며 “아프리카 에볼라 사태와 국내 메르스 사태 모두 초기에 좀 더 적극적으로 예방 수칙을 지키고 신고 조치 등을 취했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을 꼭 인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결핵, 에이즈, 뎅기열, 말라리아… 한국 위협하는 감염병 해마다 늘어 ▼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감염병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메르스 때문에 일반인의 관심이 급격히 커진 것이지, 여전히 적지 않은 감염병으로 매년 많은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대표적인 감염병은 결핵. 한국은 매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결핵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신규 결핵환자는 3만6000여 명. 2004∼2013년 연간 발생한 신규 환자 수도 꾸준히 3만∼4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에이즈 환자 역시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2013년 1114명이 신규 감염돼 처음으로 1000명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1191명의 환자가 확인됐다.

해외에서 감염병에 걸린 후 국내로 들어오는 사람도 2010년 335명, 2011년 357명, 2012년 352명, 2013년 494명, 2014년 400명 등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뎅기열 환자. 2011년을 제외하고는 최근 5년간 뎅기열 환자가 가장 많았다. 지난해에도 164명(41%)이 뎅기열에 감염된 뒤 국내로 들어왔으며 다음으로는 말라리아 80명(20%), 세균성 이질 38명(9.5%), 장티푸스 22명(5.5%), A형 간염과 홍역 각각 21명(5.3%) 순이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아프리카#에볼라 치료#신형식#감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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