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악∼!” 한밤 골목길 비명에 ‘귀 달린’ 카메라가 스르르 고개 돌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4일 03시 00분


소리 듣고 얼굴 인식, CCTV의 진화

“꺄악∼!”

지난해 4월 충북 진천군의 한 어린이집 인근 골목. 한밤중 이곳을 지나던 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자 진천군청에 있는 폐쇄회로(CC)TV 통합관제센터 모니터에도 비명과 함께 이 장면이 바로 팝업창으로 떴다. 어린이집 앞 공터에 설치된 CCTV가 비명이 나는 지점을 포착해 영상을 찍은 것이다. 화면에는 곧이어 여성의 뒤를 따라오던 남성이 거칠게 소매를 잡아끄는 모습이 잡혔다.

충북 진천군에 설치된 ‘귀 달린 폐쇄회로(CC)TV’(왼쪽). 기자가 2m 떨어진 지점에서 비명을 지르자 다른 곳을 촬영하던 CCTV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 촬영하기 시작했다. 진천=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진천군 제공
충북 진천군에 설치된 ‘귀 달린 폐쇄회로(CC)TV’(왼쪽). 기자가 2m 떨어진 지점에서 비명을 지르자 다른 곳을 촬영하던 CCTV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 촬영하기 시작했다. 진천=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진천군 제공
○ 소리 센서 2개가 비명, 폭발음 등 5종 인식

골목길에서 일어난 부부싸움으로 밝혀진 이 사건은 소리 인식 CCTV, 즉 ‘귀 달린 CCTV’가 잡아 낸 첫 사건이다. 진천군은 2013년 말 국내에서 처음으로 귀 달린 CCTV를 설치한 뒤 5개월 사이에 9건의 크고 작은 사건을 해결했다. 오미영 진천군청 통신팀장은 “CCTV 운영 요원 한 명이 약 200개의 화면을 살피는 만큼 귀 달린 CCTV가 없었다면 사건을 바로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라며 “귀 달린 CCTV는 범죄 예방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귀 달린 CCTV는 비명, 자동차 사고, 경적, 폭발음, 유리창 깨지는 소리 등 5종에 반응한다. CCTV에는 소리 종류별로 50∼100가지가 내장돼 있다. 가령 비명은 음의 높이, 크기 등에 따라 50가지 이상이 저장돼 있다. 귀 달린 CCTV를 개발한 아이브스테크놀러지 이상열 전무는 “CCTV에는 소리를 인식하는 귀 역할을 하는 센서가 2개 달려 있다”면서 “내장된 소리와 비교해 70∼90% 이상 비슷한 것으로 판단되면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자동으로 촬영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소리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소음을 제거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도시 소음은 60∼65dB(데시벨)로 1∼2m만 떨어져도 웬만한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바람이 강하게 불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주변 소음이 더 커진다. 이 전무는 “원하는 소리만 식별해서 듣는 기술이 귀 달린 CCTV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최근 아이브스테크놀러지는 30cm 간격으로 기압 변화를 감지해 가스 폭발 등 위험 상황을 인지하는 2세대 CCTV도 개발했다. 2세대 CCTV는 범행 현장 등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는 “경찰이 출동합니다. 무법 행위를 중지하십시오”와 같은 경고 방송도 내보내도록 설계됐다.

피사체가 CCTV에서 60m가량 떨어진 경우 기존 CCTV 영상에서는 해상도가 낮아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지만(위 사진) 체온을 감지해 사람만 30배
줌인한 영상에서는 얼굴이 또렷하게 나타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피사체가 CCTV에서 60m가량 떨어진 경우 기존 CCTV 영상에서는 해상도가 낮아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지만(위 사진) 체온을 감지해 사람만 30배 줌인한 영상에서는 얼굴이 또렷하게 나타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 60m 떨어진 용의자 90픽셀 해상도로 촬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60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도 얼굴을 뚜렷하게 촬영할 수 있는 CCTV를 개발했다. CCTV 화면이 증거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용의자의 얼굴이 제대로 나와야 한다. 2013년 4월 미국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당시 범인의 모습이 CCTV에 잡혔지만 화질이 좋지 않아 검거하는 데 애를 먹었다.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최소 90픽셀로 촬영해야 한다. 기존 CCTV는 7.2m 안에서 촬영해야 이 정도 해상도의 영상을 얻을 수 있다. 고해상도 카메라를 달아 해상도를 높일 수 있지만 안개가 끼거나 어두운 밤에는 여전히 또렷한 영상을 얻기가 어렵다.

김수언 선임연구원은 고성능 카메라에 들어 있는 줌 기능을 이용해 선명한 영상을 얻는 CCTV를 개발했다. CCTV에 달린 열화상 카메라가 사람의 체온 근처인 34∼37도를 인식하면 카메라가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최대 30배로 줌인 해 얼굴을 촬영한다. 최대 60m까지 떨어져 있어도 90픽셀 해상도를 유지할 수 있다.

김 연구원은 “영상 분석 기술이 더 발전하면 CCTV가 현재 촬영 중인 화면이 범죄 현장인지, 즉시 경찰이 출동해야 할 사안인지 스스로 판단해서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천·대전=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
#소리#얼굴 인식#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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