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비후성 심근증·파브리병 클리닉’ 이끌고 있는 홍그루 교수
《 2004년 10월 브라질의 축구 선수 세르지뉴가 경기 중에 갑자기 쓰러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사망 후 부검을 해보니 심장이 정상인보다 2배 이상 커져있었고, 심장 벽도 매우 두꺼웠다고 한다. 사인은 ‘비후성 심근증’. 특별한 이유 없이 심장의 좌심실 벽이 두꺼워져서 심부전과 부정맥 등을 일으키는 심장 질환이다.
문제는 평소에 특별한 증상이 없다가 과격한 운동 등을 하면 갑자기 악화돼 호흡곤란, 현기증, 가슴통증 등이 나타나고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른다는 데 있다.
이 증상을 가진 사람 중엔 평소 남들보다 운동을 잘해 선수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2000년 심장마비로 뇌사가 됐다가 2010년 사망한 야구선수 고 임수혁 씨도 비후성 심근증 의심으로 알려져 있다. 》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비후성 심근증/파브리병 클리닉을 이끌고 있는 홍그루 연세대 의대 심장내과 교수는 “특별한 이유 없이 숨이 찬다거나 가슴 통증이 있고 긴장하거나 흥분하지 않았는데 가슴이 두근거리면 비후성 심근증을 의심해봐야 한다”며 “제대로 관리만 하면 이로 인한 급사는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후성 심근증은 유전자 변이로 인한 유전질환으로 인구 500명당 1명꼴로 나타난다. 특히 20∼40대 젊은층 심장 돌연사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발생률이 적지 않은데도 낮은 인지도로 인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를 전문으로 하는 의료 기관도 국내에 많지 않다.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비후성 심근증·파브리병 클리닉을 이끌고 있는 홍그루 교수(심장내과)는 “이 병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환자와 의료진 모두 진단 및 치료시기를 놓쳐서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며 “유전질환인 만큼 가족 중 급사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검사 후 관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홍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Q. 비후성 심근증을 의심해야 할 증상은 무엇인가.
A. 운동 시 호흡곤란과 피로감이 있고 반듯하게 선 자세로 숨을 쉬기 힘들거나 가슴 통증이 있으면 의심해봐야 한다. 실신이나 어지럼증, 긴장하지 않았는데도 두근거리는 증상도 의심할만하다. 하지만 평소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 첫 번째 ‘이벤트’가 ‘급사’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Q. 특히 어떤 사람이 조심해야 하는가.
A. 유전질환이기 때문에 가족 중 급사한 사람이 있다면 증상이 없다고 해도 무조건 초음파와 심전도 및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등을 통해 정밀 심장 검사를 받아야 한다. 물론 비후성 심근증이라고 해서 모두 갑자기 사망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심장벽의 두께가 3cm 이상이라면 급사의 확률이 높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Q. 치료법은 무엇이며 완치는 가능한가.
A. 유전질환이어서 완치가 아니라 관리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두꺼워진 근육을 절제하거나 삽입형 제세동기(불안정한 심장 리듬을 정상으로 돌려주는 기구)를 체내에 이식하는 수술 등을 할 수 있다. 두꺼워진 심장 근육으로 인해 숨이 차거나 혈압이 높을 경우 관련된 약을 먹어 치료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환자가 비후성 심근증임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관리를 통해 급사를 막을 수 있다.
2000년 심장마비로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사망한 야구선수 고 임수혁 씨도 비후성 심근증 의심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DBQ. 우리나라의 환자 수가 총 몇 명이나 되는가.
A. 현재 비후성 심근증으로 진단받은 사람만 2만여 명이고,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비후성 심근증·파브리병 클리닉에서 치료 중인 환자는 1118명이다. 하지만 500명 중 1명꼴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 증상을 가진 사람은 10만 여 명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Q. 보험이 적용되는 질환인가.
A. 비후성 심근증은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산정특례(입원과 외래 진료 시 환자 본인이 진료비의 5∼10% 부담하는 제도) 대상이 된다. 치료비의 90% 이상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다.
Q. 클리닉 이름에 비후성 심근증과 함께 명시된 파브리병은 어떤 질환인가. 또 비후성 심근증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A. 파브리병은 우리 몸의 특정 효소가 결핍되어 그 합병증 중 하나로 심장 근육 세포가 커지는 유전 질환이다. 비후성 심근증의 1%를 차지한다. 다른 비후성 심근증과 달리 파브리병은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져 해당 효소만 보충해주면 치료가 된다. 현재 국내에선 120여 명의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역시 산정특례 대상으로 치료비의 대부분은 국가가 부담한다.
Q. 비후성 심근증 등 유전성 심장질환에 있어서 심장 전문의의 진단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A. 심장 근육이 두꺼워졌다는 증상만 보는 게 아니라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밝혀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숨이 차고 가슴이 아픈 등의 증상이 있어 병원을 다니면서도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을 방치했다가 사망하는 사례가 많다. 이처럼 방치된 환자를 찾아 제대로 치료하는 게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비후성 심근증·파브리병 클리닉의 목표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A. 클리닉을 통해 다양한 임상연구도 하고 국제 학술지에 논문도 많이 발표할 계획이다. 특히 비후성 심근증과 파브리병은 유전 질환이라 자식을 많이 낳는 남미 지역에서 많이 나타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질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법을 찾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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