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간호사의 병원 제대로 알기]메르스 사태 교훈 벌써 잊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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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가족 막무가내 면회요구 여전
면회 원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

김현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외과중환자실 책임간호사
김현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외과중환자실 책임간호사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우리 병원은 중환자실 보호자 면회가 완전히 금지됐다. 상황이 잠잠해진 6월 말부터는 하루에 한 번 15분씩 1명의 보호자에 한해 면회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때 보호자는 열을 잰 후 마스크를 착용하고 1회용 가운을 입어야만 면회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지 한 달여가 지난 후 중환자실 앞에서 난데없이 고성이 오갔다. 10여 명의 가족이 모두 교대로 환자 면회를 하겠다고 하자 담당 간호사가 면회 원칙과 환자 상태 등을 설명하며 거절했다. 그러자 환자 가족 사이에서 “내 식구인데 너희가 왜 보지 못하게 하느냐”는 막말이 쏟아지면서 중환자실 앞이 아수라장이 됐던 것.

아픈 사람이 있으면 몰려와 면회를 하는 문화가 메르스 전파의 원인 중 하나였다는 건 이미 잘 알려졌다. 하지만 이같이 설명을 해도 보호자들은 “이미 메르스는 끝나지 않았느냐. 그러니 면회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묻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당시 메르스 현장에 있던 의료진으로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정부는 가족이 환자를 돌보는 한국식 간병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간호사가 간병까지 맡는 포괄간호서비스를 권장하고 있다. 병원도 환자 면회 횟수나 시간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 감염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환자와 보호자의 협조가 없다면 이 같은 노력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환자 옆에 있으면서 힘이 되고자 하는 가족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애틋한 마음이 환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버이날 들고 온 카네이션 한 송이 속의 균이 중환자의 호흡기에 염증을 일으켜 인공호흡기를 달게 할 수 있다. 환자가 좋아한다며 식당에서 사온 설렁탕 한 그릇 속 대장균이 위장에 상처를 내고 2차 감염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이 같은 행동이 아픈 가족을 질병의 한가운데로 몰아가고 회복을 더디게 할 수 있다. 병원의 감염 예방 지침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 메르스와 같은 감염성 질환이 계속 유행할 것이라는 보고가 있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엔 어제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감염병이 오늘 우리나라에서 나타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병원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메르스 사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감염성 질환의 전파를 불러올 수도 있다.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열쇠는 병원과 정부가 아닌 환자 가족이 쥐고 있음을 부디 잊지 말아야 한다.

김현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외과중환자실 책임간호사
#메르스#면회#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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