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우리 병원은 중환자실 보호자 면회가 완전히 금지됐다. 상황이 잠잠해진 6월 말부터는 하루에 한 번 15분씩 1명의 보호자에 한해 면회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때 보호자는 열을 잰 후 마스크를 착용하고 1회용 가운을 입어야만 면회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지 한 달여가 지난 후 중환자실 앞에서 난데없이 고성이 오갔다. 10여 명의 가족이 모두 교대로 환자 면회를 하겠다고 하자 담당 간호사가 면회 원칙과 환자 상태 등을 설명하며 거절했다. 그러자 환자 가족 사이에서 “내 식구인데 너희가 왜 보지 못하게 하느냐”는 막말이 쏟아지면서 중환자실 앞이 아수라장이 됐던 것.
아픈 사람이 있으면 몰려와 면회를 하는 문화가 메르스 전파의 원인 중 하나였다는 건 이미 잘 알려졌다. 하지만 이같이 설명을 해도 보호자들은 “이미 메르스는 끝나지 않았느냐. 그러니 면회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묻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당시 메르스 현장에 있던 의료진으로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정부는 가족이 환자를 돌보는 한국식 간병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간호사가 간병까지 맡는 포괄간호서비스를 권장하고 있다. 병원도 환자 면회 횟수나 시간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 감염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환자와 보호자의 협조가 없다면 이 같은 노력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환자 옆에 있으면서 힘이 되고자 하는 가족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애틋한 마음이 환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버이날 들고 온 카네이션 한 송이 속의 균이 중환자의 호흡기에 염증을 일으켜 인공호흡기를 달게 할 수 있다. 환자가 좋아한다며 식당에서 사온 설렁탕 한 그릇 속 대장균이 위장에 상처를 내고 2차 감염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이 같은 행동이 아픈 가족을 질병의 한가운데로 몰아가고 회복을 더디게 할 수 있다. 병원의 감염 예방 지침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 메르스와 같은 감염성 질환이 계속 유행할 것이라는 보고가 있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엔 어제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감염병이 오늘 우리나라에서 나타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병원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메르스 사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감염성 질환의 전파를 불러올 수도 있다.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열쇠는 병원과 정부가 아닌 환자 가족이 쥐고 있음을 부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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