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무 제안을 받았어요. 아, 담배를 끊으라는 건가 싶었죠.”
지난달 중순부터 방영되는 보건복지부의 금연 광고는 국립발레단원 26명이 흡연하는 순간 뇌와 폐가 받는 고통을 발레로 표현해 화제가 됐다. 이 광고에서 안무를 담당한 박귀섭 감독(31·사진작가·전 국립발레단원)은 아이러니하게도 20년 가까이 담배를 피워온 흡연가. 당시 하루에 피우는 담배 양도 1갑에서 1갑 반 정도나 됐다.
박 감독은 담배 연기가 몸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서서히 느껴지는 괴로움을 몸짓으로 표현했다. 자신이 흡연자라 그 고통은 더 잘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그는 평소처럼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담배로 가는 손이 계속 머뭇거렸다고 한다. 아내도 간접흡연이 태아에게 얼마나 좋지 않은지에 대한 자료 등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보내왔다.
“함께 작업한 복지부 직원들이 ‘명색이 금연 광고 안무 감독인데 담배를 피우면 어쩌냐’며 금연캠프 입소를 제안했어요. 솔깃했죠. 곧 태어날 아이도 떠올랐고요. 입소를 결정하자 장모님은 파티까지 열어줬어요.(웃음)”
전국 18개 지역금연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금연캠프는 전문치료형과 일반지원형으로 나뉜다. 20년 이상 흡연했거나 관련 질환이 있는 사람이 입소할 수 있는 전문치료형은 4박 5일간 입원해 전문 의료인으로부터 상담과 금연 치료 서비스 등을 받는다. 일반지원형은 이틀 동안 금연 교육을 받는 프로그램으로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비용은 모두 무료(약 처방 시 일부 부담). 박 감독은 지난달 24∼28일 전문치료형 금연캠프에 참가했다.
“같이 입소한 분들이 70대 이상 어르신이었어요. 폐 검사를 받았는데 저는 젊어서 상태가 괜찮았어요. 하지만 그분들의 폐는 전문가가 아닌 제 눈에도 좋지 않았어요. ‘이대로 가면 30여 년 후 내 폐가 저렇겠구나’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박 감독은 캠프에 있는 동안은 담배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담배 자체를 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캠프가 끝난 후 병원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의 코끝을 가장 먼저 스치고 지나간 건 바로 담배 냄새였다.
“갑자기 얼굴이 후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담배 생각만 났죠. 껌을 씹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지만 그래도 불안했어요. 담배 광고가 반짝이는 편의점, 담배 연기가 날리는 흡연구역만 눈에 들어왔어요. 우리 사회가 너무 쉽게 담배를 접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미친 듯 집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 감독은 현재 금연 4주차에 접어들었다. 다행히 금단 현상이 점차 줄고 있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담배를 피울 때보다 편안해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담배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고, ‘죽을힘’을 다해 참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렇기에 금연 중인 사람에게 ‘담배 하나 줄까?’라는 장난을 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주변에 금연 중인 사람이 있으면 최대한 그가 담배를 접하지 않게 배려해줘야 합니다. 또 금단 현상으로 인해 예민해져 있으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금연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가족과 지인, 동료 등 주변인이 함께 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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