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9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공사 현장. 지상 435m, 107층 공사가 한창이다. 여기서부터 123층을 거쳐 555m 맨 꼭대기까지 첨탑부가 롯데월드타워 완공의 마지막 관문이다. 이 부분만 서울 여의도 63빌딩 높이(249m)의 절반쯤 된다.
107층에 들어서니 크레인이 올려다 놓은 대형 건축 자재들이 곳곳에 쌓여 있다. 그런데 모양이 조금 특이하다. 자음 ‘ㅅ(시옷)’처럼 생겼다. 전현수 롯데건설 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ㅅ자 자재는 대각선(Diagonal)과 격자(Grid)를 합해 ‘다이아그리드’라고 불린다”며 “다이아그리드로 외벽을 만들면 한 층이 1074m²(약 325평)인데도 층을 떠받들 내부 기둥을 세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 한국인만 할 수 있는 고난도 작업
다이아그리드는 두께 6cm 철판을 둥글게 말아 만든 대형 강관을 ㅅ자로 이었다. 강관의 지름은 61cm 정도다. 다이아그리드 부재 하나는 높이 11.7m, 중량은 20t에 달한다. 롯데월드타워의 한 개 층이 3.9m인 만큼 3개 층에 걸쳐 4∼6개씩 설치된다.
다이아그리드를 배치하는 데에는 고도의 시공기술이 필요하다. 벽면에 다이아그리드를 위아래로 쌓아 다이아몬드 같은 마름모를 만들어야 한다. 초고층건물은 시공 중에도 바람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기 때문에 다이아그리드를 쌓을 때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3차원 좌표를 최대한 정확히 맞춰야 한다. 현장에서 만난 이재명 공사팀장은 “다이아그리드끼리 잇기 위해서는 매우 고난도의 용접 기술이 필요하다”며 “손 기술이 뛰어난 한국인만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롯데건설은 시공 전 1년 반 동안 한국강구조학회와 공동연구를 진행해 시뮬레이션을 끝냈다. 김종락 숭실대 건축학부 교수는 “다이아그리드를 실물 크기로 만들어 다양한 검증 실험을 진행하는 제작 목업(mock-up)과 함께 500m 상공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에 대비할 안전시설 목업을 시행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다이아그리드 공법이 초고층 건물에 적용된 건 롯데월드타워가 최초다. 다이아그리드 공법이 적용된 초고층 건물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록(555m)에도 올랐다. 지금까지는 중국 광저우에 있는 438.6m짜리 국제금융센터(IFC)가 최고였다.
○ 태풍에 강하고 독특한 외관 자랑
초고층 건물에 다이아그리드를 적용할 경우 안전성이 강화된다. 전 책임연구원은 “초고층 건물을 좌우로 흔드는 태풍 등의 거센 바람이나 지진에 강한 것이 다이아그리드 공법의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초고층 건물은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바람의 저항을 크게 받는다. 실제로 이날 지상에서는 바람이 초속 3m로 잠잠한 편이었지만, 107층에서는 초속 11m 정도로 거셌다. 다이아그리드는 바람이 부딪칠 때 마름모꼴의 구조가 인장력(당기는 힘)과 압축력(누르는 힘)으로 번갈아 가며 저항해서 견뎌내는 능력이 높아진다. 롯데월드타워의 경우 순간 초속 80m 바람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 대각선을 이룬 대형 강관은 건물이 받는 연직하중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킨다. 김 교수는 “다이아그리드 공법은 댓살을 교차시키며 엮은 죽부인과 원리가 비슷하다”며 “죽부인이 내부가 비어 있지만 사람이 베고 누워도 댓살 구조를 유지할 만큼 충분한 힘을 갖는 것처럼 다이아그리드도 기둥 없이 건물의 하중을 견딘다”고 말했다. 롯데월드타워의 경우 107층에는 건물 전체를 받치는 코어 1개만 있을 뿐 내부 기둥은 하나도 없다.
건물 외벽인 ‘커튼월’에 다이아몬드 무늬가 생기면서 외관이 아름다워지는 효과도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 건설된 한쪽으로 기울어진 듯한 ‘캐피털 게이트(Capital Gate)’와 일본 나고야에 위치한 꽈배기 모양의 ‘모드 가쿠엔 스파이럴 타워(Mode-Gakuen Spiral Towers)’가 다이아그리드 공법으로 지은 대표적인 건물이다. 롯데월드 첨탑부의 모양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우아한 곡선으로 만들 예정이다. 김 교수는 “다이아그리드가 입체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에 비틀어지고 기울어지는 비정형 형태의 건물로도 설계가 가능하다”며 “건물의 미적(美的)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공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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