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전화기에 있는 빨간색 글씨의 ‘119’ 버튼을 누르자 ‘독거노인 돌보미 대상자 신고 접수’라는 메시지가 관할 소방서와 사회복지관에 바로 뜬다. 심장마비 등으로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홀몸노인에게 이 버튼은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집에 활동량 감지기 센서를 달면 홀몸노인이나 중증 장애인의 활동 패턴을 읽은 뒤 이를 데이터로 만들어 사회복지관에 전달해 건강 상태도 수시로 체크할 수 있다.
이 기술은 국내 정보기술(IT) 벤처인 하이디솔루션즈가 개발했다. 하이디솔루션즈는 국내에 이런 ‘텔레케어(Telecare)’ 시스템을 수만 대 보급한 뒤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막상 해외 진출을 타진해 보니 주거 형태나 집 안의 가구 배치, 생활습관이 국내와 전혀 달라 시스템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 3D 아바타로 홀몸노인 케어 시스템 개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이디솔루션즈가 문을 두드린 곳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산하 국가산업융합지원센터(이하 센터). 정부는 산업체의 애로사항을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도록 2011년 산업융합촉진법을 제정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센터는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댄 끝에 ‘3차원(3D) 아바타 프로그램’을 동원하기로 했다. 기업이 1차 타깃으로 정한 유럽 문화에 맞는 주택을 가상 현실로 만들고 그 안에 아바타를 입주시켰다. 아바타는 실제 집 안에서 생활하는 홀몸노인으로 프로그래밍해 컴퓨터 속에 유럽을 그대로 옮겼다.
연구진은 4개월간 수백 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렸고, 최적의 센서 배치와 연결 시스템을 찾아냈다. 이 덕분에 하이디솔루션즈는 현지화 전략에 성공해 스위스 수출을 성사시켰다. 최근에는 루마니아에서 추가 주문도 들어왔다. 이승엽 하이디솔루션즈 대표는 “텔레케어는 통신기술과 각종 서비스가 총체적으로 묶인 융합사업”이라며 “3D 아바타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수년이 걸릴 일을 4개월로 단축시켰다”고 말했다.
국내 전자칠판 1위 기업인 아하정보통신도 회의 전용 전자칠판을 개발할 때 3D 아바타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다. 가상의 회의 공간에 아바타를 여럿 투입해 이들이 수천 번 회의를 진행하게 한 결과 모니터가 75인치일 때 회의 몰입도가 가장 좋은 것으로 나타나 이 결과를 실제 제품에 반영했다.
○ “괜찮습니까?” 안전 확인하는 안전모 시장 진출
통신기술 분야 기업인 케이엠더블유(KMW)는 지난해 기존 안전모에 발광다이오드(LED)를 달아 안전성이 높고 무선통신이 가능한 ‘융합안전모’를 개발했다. 융합안전모는 낙하물이 부딪히면 안전모 센서를 자동으로 작동시켜 사용자에게 ‘괜찮습니까?’라는 음성 안내를 3, 4회 내보낸 뒤 답이 없을 경우 주변 사람의 안전모와 관리소에 자동으로 사고 발생을 통보한다.
하지만 개발만 해놓고 시장에는 바로 출시하지 못했다. ‘안전모는 구멍이 뚫려 있지 않아야 하고, 무게는 440g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기존 안전기준에 맞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사정을 듣고 센터가 해결사로 나섰다. 센터는 융합안전모가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데 문제가 없음을 기술적으로 검증해 산업융합촉진법에 따라 적합성을 인증했다. 융합안전모는 5월부터 중부발전 등 산업 현장에서 쓰이고 있다.
전기제품 전문기업인 성풍솔레드도 야간에 도로에서 빛이 나는 ‘LED 안전유도블록’을 개발했지만 KS 규격에 포함되지 않는 제품이라는 이유로 시장 진출이 좌절됐다가 센터의 지원으로 적합성을 인증 받는 데 성공했다. LED 안전유도블록은 현재 경기 과천시와 울산 울주군에 설치 중이다.
김민선 국가산업융합지원센터 산업융합정책실장은 “단순한 기술 이전에서 벗어나 기업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전방위 융합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기술 상담부터 정부제도 개선, 신제품 공동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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