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약업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요즘 국내 제약사 중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한미약품 때문이다. 한미약품은 올해 글로벌 제약회사들과 연달아 수조 원대의 신약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달리기 선수가 기록을 경신하듯 연이어 자사가 세운 해외 신약 기술수출 계약을 뛰어넘고 있다. 한미약품의 행보를 지켜보는 제약업체들은 국내 제약사의 활약에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내심 자존심이 상한 눈치다. 한 국내 상위권 제약사의 관계자는 “우리도 연구개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데 한미약품만 주목을 받아 안타깝다”며 “다들 티는 안 내면서도 연구개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하면 된다’ 보여준 한미약품
한미약품의 잇단 성과는 제약업계에 큰 자극이 되고 있다. 올해 하반기 한미약품은 두 차례나 국내 제약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수출계약을 맺었다. 올해 7월에는 독일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베링거인겔하임에 폐암치료제(HM61713)의 개발 및 상업권을 8300억 원에 수출했다.
또 이달 초에는 프랑스 제약회사인 사노피에 당뇨치료제 3종의 기술(퀀텀 프로젝트)을 4조8000억 원에 수출하는 대형 계약을 맺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또 한미약품은 다국적 제약사인 얀센에도 당뇨 및 비만치료제(HM12525A)를 1조 원에 수출했다. 신약 개발에 미온적이던 일부 국내 제약사들에도 자극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미약품은 그동안 연구개발에 집중해 ‘랩스커버리’라는 신약 기술을 내놓았다. 최근 한미약품이 다국적 제약사에 수출한 신약에는 모두 이 랩스커버리 기술이 적용됐다. 랩스커버리는 바이오의약품이 신체에 미치는 시간을 늘려 주는 기술이다. 통상 약물은 신체에 들어가면 몸에 흡수되거나 소변으로 배출돼 약효를 잃는다.
랩스커버리는 약효를 가진 물질에 특수 단백질을 붙여 효능의 지속 기간을 늘려 준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사노피에 수출한 당뇨 치료제는 통상 한 주에 한 번 약을 투여해야 하는 당뇨환자들이 한 달에 한 번만 투여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약품은 당뇨와 비만신약 외에도 왜소증 치료 호르몬제와 백혈구 감소증 치료제 등에 랩스커버리 기술을 접목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비결은 꾸준한 R&D
사실 신약 개발은 성공할 경우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실패 가능성이 높은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분야다. 통상적으로 신약 개발에는 10∼15년의 기간과 1조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연구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한미약품은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 끝에 거대 다국적 제약사들이 탐낼 만한 신약 기술을 개발해냈다. 한미약품은 2007년 이후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매출의 20%, 올해는 3분기(7∼9월)까지 1380억 원(매출액 7276억 원의 19%)을 R&D에 투자했다. 국내 제약업계가 드링크제 같은 의약부외품과 복제약(제네릭) 판매에 몰두할 때 한미약품은 꾸준하게 연구개발에 투자해온 것이 효과를 본 것이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75)의 추진력도 한몫했다. 오너의 결단력이 없으면 매출의 큰 비중을 연구개발에 쏟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부의 리베이트 단속과 약가인하 정책으로 실적이 휘청거릴 때에도 임 회장은 신약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회사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을 때 오히려 R&D 투자를 늘린 적도 있었다. 결국 이러한 꾸준한 투자 덕분에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미약품 외에도 다수의 국내 제약사가 연구개발비를 늘리고 있는 추세다. 국내 제약업체들의 연구개발비는 2009년 7868억 원에서 2011년 9803억 원, 2013년 1조2388억 원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특히 녹십자, 셀트리온, 동아에스티, LG생명과학 등이 R&D 비중을 최근 크게 늘렸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몇몇 업체가 성공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다 보니 뒤따르는 업체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위기 탄 국내 제약사들
한미약품 이외의 국내 제약사들도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성과를 보이고 있는 업체들도 있다. 보령제약의 고혈압 신약인 카나브는 지난해 9월 멕시코에서 발매된 이후 진출 1년 만에 순환기 내과 ARB 계열(혈관을 수축시키는 것을 막아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물) 단일제 부문에서 주간 처방률 1위에 올랐다.
고혈압 약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약이다. 그만큼 다국적 제약사 간에도 경쟁이 치열하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수천 번의 실패 끝에 개발한 신약이 성과를 올려 기쁘다”며 “임상을 통한 다양한 적응증을 확대하고 카나브 후속 신약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녹십자는 면역결핍 치료제 면역글로불린 ‘이비글로불린에스엔’의 임상 3상을 완료하고 희귀병인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일동제약도 뉴클레오티드 계열 만성B형 간염치료제인 ‘베시포비어’의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일동제약은 최근 스위스의 전임상시험기관인 할란 연구소에서 해당 신약에 대한 발암성 및 생식독성시험을 순조롭게 마치기도 했다. 종근당도 제약업계의 최고 수준인 22개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신약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정부도 제약과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20일 제약업계 단체장들과의 자리에서 “정부가 제약과 바이오산업을 육성하고 국내 제약사의 글로벌 진출을 도울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찾겠다”며 “한미약품과 같은 사례가 많이 창출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투자를 강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재국 한국제약협회 상무는 “국내 제약 업계가 연구개발 비중을 조금씩 늘리고 꾸준히 신약 개발을 위해 노력했던 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더 많은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진출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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