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말 미국 시카고에서는 영상의학 신기술을 선보이는 북미영상의학회(RSNA)가 열린다. 굴지의 헬스케어 기업들이 첨단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소개하고, 영상의학 분야 권위자들과 정보를 교류하는 장(場)이다. 101회째인 올해 RSNA 행사에는 세계 700여 개 기업이 참여했다.
이번 행사에는 하드웨어 장비뿐 아니라 다양한 의료 소프트웨어 기술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헬스케어 분야 글로벌 그룹 필립스는 이 자리에서 ‘인텔리스페이스포털(ISP) 버전8’을 선보였다. ISP는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초음파 등 다양한 영상 진단 정보를 종합해 질병을 추적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다.
○ 수기 방식 벗어난 정밀한 분석 가능
그동안 영상의학과에서는 환자의 종양을 추적할 때 ‘수기(手記) 방식’을 활용했다. 암 환자는 치료 과정에서 MRI, CT, X선 등을 수도 없이 촬영한다. 의사는 평면을 펼쳐둔 채 이 정보들을 모아 손으로 직접 그려가며 암의 위치와 크기 등을 파악했다. 이런 방식의 단점은 의사 역량에 따라 정확도에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 환자들이 이른바 권위자를 찾는 것도 더욱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통해 환자 상태를 분석하면 의사 개인 역량에 따른 차이를 최소화하면서, 보다 많은 환자들이 정확한 진단 결과를 얻게 된다.
의료 소프트웨어의 또 다른 장점은 시공간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환자 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의사는 태블릿PC나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통해 손쉽게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또 서로 다른 제조사의 영상 진단 장비를 통해 얻은 정보도 호환이 가능해 병원 간, 의료진 간 협업이 보다 원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 폐암 등 조기 발견 수월
폐암은 조기 진단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종양이 커진 뒤에야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심부정맥의 핏덩어리가 폐혈관을 막아서 발생하는 폐색전 역시 그 크기가 작을 때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ISP 버전8은 다양한 영상진단 정보를 종합·분석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제공해 이 같은 한계를 뛰어넘었다. 활용 방식은 스마트폰과 비슷하다. 스마트폰에서 안드로이드나 iSO는 운영체제 역할을 하고, 여기에 여러 가지 앱을 내려받아 목적에 맞게 활용한다. ISP 버전8은 운영체제 역할을 한다. 여기에 수십 가지 앱을 설치해 질병의 진단과 추적에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CT 결절 측정’ 앱은 폐 결절의 크기와 모양, 시간에 따른 변화 양상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 ‘CT 폐동맥 분석’ 앱은 육안으로 식별하기 힘든 폐색전도 정확하게 발견해 조기에 치료할 수 있게 한다. ‘MMTT’ 앱은 치료 전후 종양의 지름 변화를 그래프로 자동출력해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구진모 서울대 의대 영상의학과 교수는 “고품질 영상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상을 얼마나 제대로 분석하느냐가 진단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문제”라면서 “의료 소프트웨어를 통해 신속하고 정확한 분석이 가능해졌고 치료 예후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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