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당시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시작으로 일본은 지금까지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21명 배출했다. 기초연구에서는 전통 강국으로 꼽힌다.
최근 이런 일본에 산업화 바람이 거세다. 2013년 아베 신조 총리가 총리 직속의 과학기술 최고 의결 기구인 ‘종합과학기술회의’에서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문한 뒤 정부 차원에서 기초연구를 첨단 산업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범부처로 진행되는 ‘전략 혁신 프로그램(SIP·Strategic Innovation Promotion Program)’이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는 에너지, 스마트 자동차 등 총 11개 사업단을 선정해 지난해에만 총 500억 엔(약 4900억 원)을 투입했다.
○ 일본, 2020년 도쿄 올림픽 맞춰 첨단 기술 상용화
SIP 부책임자인 아사노 유키(淺野右樹) 내각부 참사관보좌는 “SIP는 일본 정부가 처음 추진하는 형태의 정책”이라며 “기초연구가 산업화로 연결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 기업, 국가연구소를 모두 모았다”고 말했다.
목표는 철저히 상용화에 맞춰졌다. 차세대 친환경 청정에너지원으로 꼽히는 수소를 상용화하기 위해 꾸려진 ‘에너지 수송(Energy Carriers)’ 사업단의 다니구치 신이치(谷口愼一) 정책조사원은 “도요타가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를 개발했고, 혼다도 조만간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를 출시할 예정”이라며 “도요타는 현재 수소버스를 테스트 중이며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에 맞춰 수소버스를 운행할 수 있도록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혁신적 구조 물질(SM4I)’ 사업단은 항공기에 사용할 수 있는 가볍고 튼튼한 첨단 소재를 개발해 연료 사용량을 줄이는 게 목표다. 스미야 마사토모(角谷正友) 물질재료연구기구 박사는 “좀 더 강하고, 가볍고, 열에 강한 혁신적인 재료를 만들어 항공기 동체 재료로 사용할 계획”이라며 “1200도까지 올라가는 항공기 엔진에 사용할 수 있는 부품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일본 기초연구의 산실로 불리는 이화학연구소(RIKEN)도 산업화 열풍에서 예외는 아니다. 후지타 아키히로(藤田明博) 산학연계본부장은 “카메라 기술이 뛰어난 올림푸스와는 현미경에 사용하는 광센서를 공동 개발하고 있고, 도요타와는 뇌파로 움직이는 휠체어를 개발 중”이라며 “이화학연구소에서 진행되는 연구의 절반가량이 생명과학인 만큼 유전자, 바이러스, 줄기세포 등에서 산업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이화학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이 설립한 벤처는 총 22개. 이 가운데 ‘키옴(Chiome) 바이오사이언스’는 항체를 생산하는 독보적인 기술을 토대로 4년 전 상장하면서 이화학연구소가 배출한 가장 성공적인 산업화 사례로 꼽힌다. 유도만능줄기(iPS)세포를 활용하는 ‘힐리오스(Healios)’ 등 2개 벤처도 올해 상장에 성공했다. 후지타 본부장은 “기초연구 수행이라는 이화학연구소의 기본 임무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특허 출원을 돕고 기업과 협업을 계속 장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한국, ‘스마트 토이’ 등 상용화 속도
국내에도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기술 사업화 프로젝트가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은 2013년 ‘신산업 창조 프로젝트’를 시작해 2년 안에 연구 성과를 사업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15개 사업단이 선정됐고, 2013년 1기로 선정된 사업단은 결실을 거뒀다.
경북대 사업단은 의료 현장에서 감염균을 빠르게 진단할 수 있는 분자진단 기기와 시약을 상용화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사업단은 조립형 블록 완구에 사물인터넷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토이’를 개발해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CES)에 참가할 예정이다.
강훈 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장은 “연구실에서 나온 기초 및 원천연구가 논문으로 사장되지 않고 사업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랩투마켓(Lab-to-Market)’ 성공 사례가 많아질수록 한국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서 탈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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