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침이나 뜸, 부황 등에만 건강보험이 적용됐지만, 앞으로는 표준임상진료지침 대상이 되는 30개 질환에 대한 치료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예정이다. 동아일보DB
대기업 해외 주재원인 남편과 함께 대만에 살다가 지난해 말 귀국한 주부 이모 씨(36)는 최근 다섯 살 난 딸이 감기에 걸려 집 근처 한의원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어린이가 먹기 편하게 만들어진 짜 먹는 형태의 감기 한약의 경우 건강보험 대상이 아니어서 1포에 1500원 정도로 비쌌던 것. 하루에 2, 3번 복용한다고 하면 약값만 하루 기준 3000∼4500원에 이르렀다. 이는 일반 소아청소년과 의원에서 처방받아 약국에서 사는 감기약(본인 부담 3일 치 기준 1000∼1500원)보다 훨씬 비쌌다. 이 씨는 “대만에선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일반 병원보다 한의원, 즉 동양의약을 전문으로 다루는 곳을 주로 찾는다”며 “우리나라의 한의약 치료가 선진화가 많이 됐지만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여전히 약값이 비싸다”고 말했다.
다국적기업 중국지사에서 일하다 지난해 한국지사에 온 미국인 스티브 씨(49)도 한의약에 대해 불만이 많다. 중국에서 한방과 양방 협진을 통해 초기 위암을 치료한 그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막상 이용해 보니 중국과 전혀 달랐다. 우선 달여 마시는 첩약은 서양인인 그가 먹기에 영 불편했고, 양한방 협진 진료를 하는 병원이 많지 않았다. 치료법은 회사와 집 근처 한의원들이 서로 달랐다. 그는 “개별 한의원의 치료법이나 서비스, 친절함은 중국보다 한국이 훨씬 나은데 훌륭한 동양의약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거나 육성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 한국만 동양의학 육성 걸음마 단계
한국과 중국, 대만, 일본 등의 동양의학이 보완대체 의학으로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다. 중국은 이미 정부 주도로 중의약(中醫藥)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의 병원 병상 수는 2003년 28만 개에서 2012년 61만 개로 증가했고, 중의약에 대한 수요는 연간 12%씩 증가하고 있다. 중국은 중의약 수출로 2010년 19억4400만 달러(약 2조3600억 원)를 벌었는데, 이는 전년 대비 22.8% 늘어난 수치다. 대만 역시 정부 주도로 육성하고 있으며, 일본은 고품질 한약 제제를 중점적으로 키운다.
하지만 국내 한의약(韓醫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전통 한약재 시장은 규모가 지속적으로 축소됐고, 한약 제제 시장 규모는 2013년 기준 3006억 원으로 중국(21조 원)과 일본(1조5000억 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다.
건강보험 적용 비중도 2014년 기준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4.2%에 불과하다. 이는 대만의 10분의 1 수준인데, 고스란히 환자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또 표준임상진료지침이 부족해 한의원마다 진료 방법이나 수준이 달라 환자의 신뢰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2011년 이뤄진 실태조사를 보면 한방 진료의 불만족 요인으로 응답자의 34.8%가 “한의사마다 다른 치료방법”을 꼽았다.
이 같은 상황은 해외 의료 환자 유치에도 걸림돌이 된다. 2013년 기준 한방 진료를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9554명으로 전체 해외 의료 환자의 3.4%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가 13일 한의약육성발전심의위원회를 열고 ‘제3차 한의약 육성 발전 종합 계획(2016∼2020년)’을 확정해 발표한 이유도 이 같은 한의약 이용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한편 양질의 자원을 개발 육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과 대만, 일본이 선점하고 있는 동양의약 시장에 진출하려는 데 있다. 이는 바이오헬스 산업을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정부 방침과도 일맥상통한다.
주요 내용을 보면 우선 2020년까지 감기와 소화불량, 암, 난임, 치매 등 30개 질환의 한방 진료에 대해 표준임상진료지침이 마련된다. 즉, 어느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을 가더라도 표준화된 한방 진료 서비스를 받게 되는 것. 지침이 마련된 이 30개 질환에 대해선 건강보험 적용이 추진돼 환자의 비용 부담이 대폭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2018년부터는 추나(비뚤어진 뼈를 밀고 당겨서 교정)나 운동요법, 한방 물리치료 등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된다.
한약 현대화도 추진한다. 첩약(달여 먹는 약) 중심의 약제를 가루약과 알약, 짜먹는 약 등 다양한 형태의 약으로 개발해 환자의 복용 및 휴대의 편의성을 높일 계획이다. 한약 특유의 냄새와 쓴맛을 줄여 특히 외국인 환자에게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는 가루약만 건강보험 혜택을 줬지만, 앞으로는 짜먹는 약과 알약으로 개발된 한약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또한 국공립병원 내에 한방과를 추가로 설치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현재 한방과가 있는 국공립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 국립재활원, 부산대 한방병원 등 3곳뿐이다. 한의약의 과학화와 기술 혁신을 위해 연구개발 지원금은 현재 480억 원에서 매년 6% 이상 확대해 2020년에는 600억 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방문규 복지부 차관은 “한의약을 표준화, 과학화해 국민 건강 증진에 도움을 주고 산업동력으로 발전시키는 데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차질 없는 추진을 위해 한의약발전심의위원회를 매년 열어 점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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