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인천 연수구 극지연구소. 우주선 선임연구원이 나무 화석 사진을 모니터에 띄웠다. 돌에 둥근 나이테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옆에 있던 오창환 연구원은 “약 3억 년 전 남극에 살았던 실제 나무”라며 “나무가 물속에 잠긴 뒤 주변 광물들이 나무의 세포벽 등에 침투해 돌로 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 올해 탐사에서 식물화석 300kg 발굴
두 사람은 지난달 남극에서 17일간의 화석 탐사를 마치고 최근 귀국했다. 이들은 박태윤 선임연구원과 함께 ‘삼총사’를 이뤄 탐사를 진행했다. 남극에서 찾는 돌로는 운석이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은 수억 년 전 남극 대륙에 살았던 생물의 종이 그대로 굳은 채 묻혀 있는 화석을 찾고 있다. 이 돌에는 당시 남극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극지연구소가 남극 화석 발굴에 도전한 건 이번이 4번째다. 두 번째 남극기지인 장보고기지에서 북쪽으로 330km 떨어진 곳에 화석을 찾기 위한 베이스캠프를 마련했다. 베이스캠프 반지름 200km 안의 지질환경을 조사하고 화석을 찾기를 반복했다. 1월은 남극에서 가장 따뜻하지만 캠프 안의 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
매일 오전 8시, 날씨가 허락하면 삼총사는 헬기를 타고 탐사를 시작했다. 퇴적암 전문가인 우 연구원이 앞장섰다. 퇴적층의 두께와 암석 종류 등 특징을 기록하면서 화석이 묻힌 퇴적층을 발견하면 나머지 두 연구원에게 알렸다. 박 연구원은 동물화석을, 오 연구원은 식물화석을 맡았다.
올해 베이스캠프를 친 곳은 약 3억 년 전인 후기 고생대 페름기에 형성된 지층이 있는 곳이다. 당시 남극에는 얕은 강이 흘렀고 나무도 자랐다. 이를 입증하듯 베이스캠프 주변에서는 겉씨식물로 추정되는 나무 화석이 대거 발견됐다. 헬기를 타고 약 100km 날아가자 종자고사리 잎 화석도 나왔다. 이번 탐사에서 연구진은 식물화석만 300kg 이상 발굴했다. 이들 화석은 현재 남극에서 극지연구소로 운반 중이다.
동물화석을 찾던 박 연구원에게도 운이 따랐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헬기를 이틀밖에 못 띄웠지만 탐사대원 한 명이 베이스캠프에서 70km 떨어진 곳에서 전기 고생대 캄브리아기 삼엽충 화석을 찾았다. 지난해 탐사에서는 후기 캄브리아기 삼엽충 화석을 발굴했다.
이들을 일일이 망치질해 필요 없는 돌을 빼고 삼엽충 화석을 꺼내 보니 길이 0.3mm인 새끼부터 몇 cm인 성체 등 삼엽충의 성장 과정을 추정할 수 있는 화석이 여럿 나왔다. 박 연구원은 현재 이를 토대로 삼엽충의 머리와 꼬리가 각각 어떻게 성장했는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5억 년 전 남극은 따뜻한 바다”
극지연구소가 탐사를 벌인 지역은 독일과 이탈리아도 지질 탐사에 열을 올리는 곳이다. 올해 극지연구소 탐사대가 베이스캠프를 마련한 곳에는 이탈리아 탐사대가 먼저 다녀갔다. 독일 탐사대도 조만간 이곳에 도착한다.
지금까지 발표된 지질학적 근거와 화석 증거에 따르면 현재의 남극 대륙은 5억 년 전 여러 대륙이 합쳐지면서 형성됐고, 장보고기지 근처도 당시에는 따뜻한 바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 연구원은 “1억8000만 년 전부터 대륙이 갈라지면서 인도 호주와 분리됐고, 약 3000만 년 전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으면서 남극은 눈과 얼음의 땅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극 화석 탐사는 남극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다. 최근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인 문제로 인식되면서 세계 각국은 여러 가지 이유로 남극 탐사에 경쟁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다. 우 연구원은 “화석 발굴이나 지질 탐사는 기초 연구에 해당하지만 향후 남극에서 유용한 자원을 찾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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