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공계 대학생들로 구성된 ‘효성 블루챌린저’ 단원들이 베트남 현지에서 옥수수 훈연기 ‘블루 콘 스모커’를 제작해 성능을 시험해 보고 있다. 효성 블루챌린저 제공
“실내에서 발생하는 연기 때문에 2시간마다 한 명꼴로 사망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지혜 단원(경희대·2학년)의 한마디에 웅성웅성하던 분위기가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지난달 26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산길로 6시간을 달려 도착한 까오방 찌에우응우옌 마을. 때아닌 북극한파로 체감온도가 영하로 떨어졌지만 맨발에 슬리퍼만 신은 채 비 젖은 진흙땅을 걸어온 주민들이 인민위원회(우리나라의 주민자치센터에 해당)에 모였다. 효성이 기아대책과 함께 발대한 대학생 적정 기술 봉사단 ‘효성 블루챌린저’ 단원들이 개발한 옥수수 훈연기 ‘블루 콘 스모커’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서울 여의도 면적만 한 이 동네에는 206가구가 듬성듬성 떨어져 산다. 마을 주민들은 나무로 만든 가옥 안에서 화로에 불을 피워 취사와 난방을 해결하기 때문에 집 안에서 항상 연기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다.
마을 대표인 하티호안 씨(47)는 “어린아이들이 늘 기침을 달고 산다”며 “옥수수를 훈연하는 시기에는 증상이 더 심해진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주식으로 먹는 옥수수는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도록 매년 6∼8월 훈연 건조 과정을 거친다. 화덕 위 다락에 놓인 옥수수에 연기가 닿으면 고온의 열기가 옥수수 표면을 말리고 연기가 코팅제 역할을 해 옥수수를 장기 보관할 수 있다.
블루챌린저는 지난해 8월 이곳을 방문해 연기가 나지 않는 화덕인 ‘블루 스토브’를 일차적으로 보급했다. 블루 스토브는 블루챌린저 1기 단원인 이공계 대학생들이 직접 개발했다. 김지현 단원(연세대·4학년)은 “연기로 인한 주민들의 건강 악화부터 막자는 생각에서 블루 스토브를 공급했지만 옥수수 훈연에는 사용할 수 없어 현지 사정에 완벽히 들어맞지 않았다”며 “블루 콘 스모커는 호흡기로 들어오는 연기의 양은 최소화하면서 옥수수도 훈연할 수 있는 새로운 화덕”이라고 말했다.
블루 콘 스모커는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도록 제작 방식을 최대한 간소화했다. 재료는 폐유 통 1개와 짧고 긴 파이프 하나씩만 있으면 된다. 폐유 통에 짧은 파이프와 긴 파이프를 나란히 꽂고 둘을 연결한 뒤 짧은 파이프에 장작을 집어넣는다. 긴 파이프 위에는 연통을 설치한다. 그런 다음 장작을 태우면 양쪽 파이프에서 기압 차가 생겨 장작이 탈 때 나오는 연기가 짧은 파이프로는 안 퍼지고 긴 파이프를 타고 위로 올라간다. 연기가 위에서만 배출되기 때문에 좌식 생활을 하는 주민들에게는 연기가 직접 닿지 않는다.
최인화 단원(전남대·3학년)은 “학교 수업에서는 설계를 구상하거나 프로토타입(시제품)만 만들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제품을 만들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자문역을 맡은 홍성욱 한밭대 적정기술연구소장은 “이공계 대학생들이 현지 환경을 조사하고 이에 적합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전공 지식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보람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적정 기술의 최종 목표는 주민 스스로가 이 기술을 활용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현재 블루 콘 스모커 가격은 현지 돈으로 60만 동(약 3만3000원). 하지만 주민의 절반가량은 월 소득이 110만 동(약 6만 원) 미만의 빈곤층이다.
허동규 효성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담당자는 “향후 현지 사용 만족도를 확인해 더욱 완성도를 높인 제품을 추가로 보급할 예정”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자발적인 소비 시장이 형성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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