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는데 아쉽다. 아직 알파고가 상수(上手·고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바둑은 아직 인간이 (기계를 상대로) 해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이세돌 9단은 15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인간과 인공지능(AI) 간 바둑을 놓고 ‘세기의 대결’을 펼친 소감을 전했다.
그는 이번 매치에서 패배를 인정했지만 굴복하지는 않았다. 그는 “알파고는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정말 끝없이 집중했다. 다시 붙어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서도 “(하지만) 실력적인 우위는 인정하지 못한다. 그런 부분에서는 사람이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대국에서 승리하지 못한 아쉬움도 전했다. 이 9단은 “경기 초반에 아무래도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패했다. (나의) 부족함이 다시 한 번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며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이렇게 많이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 순간 여러 감정이 교차한 듯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또 “더 열심히 노력해서 발전하는 이세돌이 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장에서는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향후 자신의 기력에 변화가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알파고 수법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것들이 다 맞았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앞으로 조금 더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알파고의 대국 스타일에 대해서는 “알파고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아니고, 두는 스타일과 행동이 너무나도 달랐다. 그것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 9단은 AI와의 대국이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소회했다. 그는 “프로 기사든 아마추어 기사든 바둑은 즐기는 게 기본이다.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가) 바둑을 즐기고 있나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알파고와의 대국은 정말 원 없이 마음껏 즐겼다”고 말했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알파고의 승리가 확정되자 자신의 트위터에 “알파고가 자신이 저지른 큰 실수를 회복한 것에 대해 극도로 흥분했다”며 “역사에 길이 남을 게임을 치른 알파고팀과 놀라운 실력의 이세돌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
딥마인드의 단기적, 장기적인 계획과 전망에 대해서 밝혀 달라는 질문에 허사비스 CEO는 “영국으로 돌아가서 몇 주 동안 분석을 하고 나서 향후 행보를 결정할 것”이라며 “알파고에 많은 대국을 두게 할 것인지, 기술을 대중에게 공개할 것인지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또 “수개월 뒤에 몇 가지 안을 만들어서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AI가 가져올 사회적, 문화적인 문제에 대해 알파고 개발 총괄 데이비드 실버 교수는 “향후 직면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심사숙고하고자 윤리위원회를 설립했고 과학저널 등에 (기술개발 내용을) 발표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며 “강조하고 싶은 것은 AI가 아직 개발 초기라는 점이며 향후 인류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폐회식에서 한국기원은 탁월한 기량을 뽐낸 알파고에 명예 프로 9단증을 수여했으며, 이 9단과 구글 딥마인드 측에는 4국에서 승부를 갈랐던 78수의 기보가 그려진 넥타이를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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