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원기능은 연산자였다. 연산의 기본이 되는 10개의 숫자엔 표정이 없다. 기호와 의미가 정확히 일치한다. 음악은 다르다. 길고 짧음, 음색, 강약…. 거기 노랫말까지 결합되면 변수는 핵분열처럼 폭증한다. 인간의 창작엔 주취나 실연(失戀), 흥분처럼 계산하기 힘든 감정적 변수까지 작용한다. AI가 만든 음악이 인간을 감동시킬 날은 최소한 내일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다음 세기 역시 아닐 것 같다.
2014년, 영국 음악가 스퀘어푸셔는 ‘Music for Robots’를 냈다. 모든 악기를 기계가 연주한 음반. 78개의 기계 손가락과 22개의 기계 손발이 인간 밴드 멤버처럼 기타, 베이스기타, 드럼을 치는 소름 끼치는 장면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지난해 기자와 만난 스퀘어푸셔는 “인간의 창작에 느낌, 헌신, 열정 같은 정신이 깃든다는 신화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2007년,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 젠프 스튜디오는 명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1955년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을 컴퓨터 연주로 재연한 음반을 냈다.
미국 작곡가 데이비드 코프는 인공지능 작곡의 선구자로 불린다. 자신이 개발한 소프트웨어에 바흐나 모차르트의 작곡 스타일을 학습시킨 뒤 작곡을 의뢰한다. 2001년부터 그것은 바흐, 모차르트의 것과 닮았지만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아모스라는 AI가 있다. 스페인 말라가 대학이 개발한 작곡용 인공지능. 2010년 10월 15일에 태어난 그는 이듬해 클라리넷, 바이올린, 피아노 3중주곡 ‘Hello, World!’를 발표했다. 세 살 때(2012년)는 이아모스의 작품 10곡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해 앨범으로 냈다. 이아모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자 이름이다.
대중음악 시장에서 머니코드는 갈수록 예측 가능해지고 있다. 청각만으로는 만족될 수 없는 멀티미디어, 다채널 시대에 2∼3개의 기획사, 4∼5개의 방송사가 만든 들을거리가 차트 상위권에 장기 집권한다. 17일 미국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뮤직 페스티벌에서 데이비드 보위의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는 “이제 음악 듣는 일은 슈퍼마켓 가서 2∼3개의 케첩 상표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일과 비슷해졌다”고 했다.
작곡용 AI가 대량생산한 히트 곡을 듣는 세상은 터미네이터의 세상보다 빨리 올지 모른다. 현재 히트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이미 기계적이다. 그 세상은 생각보다 무지갯빛일 수도 있다. 사람 대신 예쁜 곡을 한없이 순산하는 AI….
어차피 우리의 삶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그들’, 또는 그들이 만든 시스템에 따라 움직인다. 삶의 예술적인 부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플러그를 뽑으면 되지!’
어떤 누리꾼이 제시한 알파고 쉽게 이기는 법이다. 어쩌면 나 역시 산소와 음식이라는 전원에 연결돼 매일 기계와 다를 바 없는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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