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만든 바둑 초고수 ‘알파고’를 통해 인간들은 인공지능(AI)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목격했다. 저도 모르게 내뱉은 감탄사에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찬사와 인간의 한계를 실감한 두려움이 한데 섞여 있었다. 벌써 AI가 대체할 인간의 직업들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이들도 있다. 국내 일부 금융사가 진행 중인 인력 구조조정이 ‘로보 어드바이저’ 확대 전략의 후폭풍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1일부터 사전 예약을 받은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자동차 ‘모델3’은 전 세계 자동차 시장 패러다임을 단숨에 바꿔놓을 태세다. ‘모델S’, ‘모델X’ 등 전작들이 전기차 시대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모델3은 가능성을 현실로 바꿔놓고 있다. 온라인 접수 사흘 만에 예약 구매 대수가 27만 대를 넘었다는 건 자동차 시장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필자 주변에도 2년 뒤에나 받을 수 있는 이 자동차를 예약하기 위해 계약금 1000달러를 낸 이들이 제법 있다.
이런 ‘놀라운 사건’들은 앞으로 보다 잦아지고 그 충격파 또한 보다 커질 게 분명하다. 당연히 미래 기술에 대한 주도권 싸움도 더 치열하게 전개될 터이다.
이제껏 기업의 핵심 경쟁력은 고품질의 제품(또는 서비스)을 남들보다 싸게 생산해 시장에서 효과적으로 판매하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 강점을 지닌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새로운 길을 개척한 자의 시장 독식은 이미 스마트폰 업계에서 증명됐다. 스티브 잡스가 설계한 애플의 ‘스마트폰 생태계’(아이폰과 iOS)는 10년 가까이 견고한 왕조를 지켜내고 있다. 삼성전자-구글 연합군(갤럭시와 안드로이드)이 뒤를 따랐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리더는 여전히 애플이다. 삼성전자가 애플보다 훨씬 많은 스마트폰을 팔고도 6, 7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이익을 남기는 이유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일류기업들은 인간의 삶을 바꾸는 기술을 고민한다. 그들이 내놓은 기술은 세상을 바꾼다. 그런데 삼성은 우리가 가진 기술로 기존 제품을 어떻게 바꿀지에만 집중한다”고 했다. 글로벌 기업 삼성이 여전히 ‘패스트 팔로어’에 머물 수밖에 없는 원인이라는 설명이었다.
삼성전자는 뛰어난 제품 혁신가다. 지난해 갤럭시 S6 시리즈에서 획기적 혁신을 이뤄내 찬사를 얻었다. 올해의 갤럭시 S7 시리즈는 그 혁신의 완성도가 더 높아졌다. 갤럭시 S7 시리즈의 판매 열기도 전작보다 뜨겁다. 삼성전자가 1분기(1∼3월)에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거둔 것도 이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렇듯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큰 성과를 이뤄낸 삼성의 전략을 폄훼할 이유는 없다.
다만 구글과 테슬라가 세상에 던진 충격을 삼성은 왜 줄 수 없는가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그리고 또 하나, 세상을 바꿀 기술들의 주도권 경쟁에서 뒤처진다면 삼성이 ‘잘할 수 있는 것’ 또한 점차 줄어들 것이란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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