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마약중독자들 맞춤형 재활 프로그램으로 새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5일 03시 00분


식약처, 마약퇴치 대책 발표 앞두고… 뉴욕주 브롱크스 마약재활센터 찾아

손문기 처장 등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들이 21일 미국 뉴욕 주 마약재활센터에서 마약 및 알코올 중독자들과 만나 중독 과정을 듣고 있다. 뉴욕=이정은 기자 lightlee@donga.com
손문기 처장 등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들이 21일 미국 뉴욕 주 마약재활센터에서 마약 및 알코올 중독자들과 만나 중독 과정을 듣고 있다. 뉴욕=이정은 기자 lightlee@donga.com
“엄마는 장님이었어요. 앞을 못 보는 엄마 앞에서 열 살 때부터 담배와 술을 훔치기 시작했어요. 마약 혐의로 체포된 건 열 여섯 살이었고요….”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주 브롱크스의 마약재활센터(ATC) 회의장에서 마약 및 알코올 중독자 10명이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들과 마주 앉았다. 히스패닉계 ‘제프’라는 청년이 이 같은 마약 중독 과정을 털어놓기 시작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 적는 한국 공무원들의 손길이 빨라졌다.

이례적인 이날 미팅은 18년 만에 열린 유엔 마약특별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손문기 식약처장의 요청으로 성사됐다. 정부의 마약퇴치 종합대책 발표를 앞두고 식약처 산하에 있는 마약퇴치운동본부의 활동에 참고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아일랜드계 이민자인 크리스 씨(40)는 “이웃 중에 킬러나 마약상이 많았고, 어렸을 때부터 마리화나를 접하면서 마약에 중독돼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고 했다. 스탠리 씨(56)는 9·11테러 당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아들의 사망으로 알코올에 중독된 사례. 뇌수술 후 마약에 중독돼 말을 더듬는 남성,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며 울먹이는 여성 등 둥그렇게 둘러앉은 10명의 스토리가 하나씩 이어졌다.

이들은 “재활센터의 맞춤형 프로그램이 새로운 삶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함께 모인 다른 치료자들과 경험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마약에 다시 손대고 싶은 욕구를 견뎌내는 데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35년간 마약을 끊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재활센터를 찾았다는 한 할머니는 “이제 손녀들을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의욕을 보였다.

브롱크스 ATC는 ‘알코올 및 마약류 오남용 서비스센터(OASAS)’가 운영하는 뉴욕 주 내 12개 재활센터 중 하나. OASAS의 재활 프로그램 신청자가 하루 평균 9만7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미국의 마약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연간 14억 달러(약 1조6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이 센터에서는 중독자의 특성과 상황 등에 맞춘 800여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손 처장은 미팅이 끝난 뒤 10명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굉장히 나쁜 사람들이 헤로인 코카인에 손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오늘 만난 분들은 호기심에서 충동을 이기지 못해 시작했다가 인생 파멸의 위기를 맞기도 한 것 같다”며 “남녀노소를 차별하지 않는 마약의 유혹에 노출되지 않도록 ATC의 활동을 참고해 우리도 더 집중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욕=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마약중독자#미국#식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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