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왕이 어떤 질환에 시달렸는지는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상세히 전해져 내려온다. 왕의 질환은 그가 살아온 인생과 당시 백성의 생활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실록 속 왕의 질환과 역사, 그리고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치료 약제를 소개하는 ‘이상곤의 실록한의학’ 칼럼을 연재한다. 필자인 이상곤 박사는 대구 한의대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에서 갑산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왕의 한의학’ ‘낮은 한의학’ ‘코, 음기로 다스려라’ 등이 있다. 》
최근 종영한 인기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 주인공 태종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가 아꼈던 포은 정몽주에게 조선의 개국에 동참하길 바라며 지었다는 시조 ‘하여가’ 중 일부다. 태종은 드렁 칡처럼 얽혀 살길 끝내 거부한 정몽주를 주살했고 훗날 조선의 3대 왕으로 등극했지만 정작 ‘드렁 칡’을 먹지 못해 한평생 목 디스크로 인한 견비통(肩臂痛)으로 고생했다. 한평생 주변 사람들과 칡과 등나무처럼 얽혀 갈등(葛藤)을 일으키고 살았지만 칡의 뿌리인 갈근(葛根)의 효능을 몰랐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곳곳에는 태종이 목에서 어깨, 팔, 손으로 이어지는 통증 때문에 매우 힘들어했다는 기록이 이어진다. 재위 13년부터 “풍질(風疾)이 있어 힘들어했다”는 기록이 보이더니 11월에는 “임금의 손이 회복되지 않아 흘(笏·옥으로 만든 도구)을 잡기가 어렵다”거나 “오른팔이 시리고 아리며 손가락을 펴고 구부리는 것이 어려웠다”는 기록이 보인다. 세종 1년에는 “상왕(태종)이 목이 뻐근하고 아파서”라는 기록도 있다. 증상을 종합하면 태종의 통증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목 디스크로 인한 견비통과 유사하다.
태종은 정몽주와 이성계의 책사로 조선 개국 공신인 정도전을 죽이고 왕자의 난을 통해 왕좌에 올랐지만 그로 인한 인간적 고뇌는 스트레스성 질환인 목 디스크를 일으켰다. ‘하여가’에서 함께 사는 세상의 상징으로 언급한 칡은 바로 그의 견비통 증상을 해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약재다. 얼굴과 목, 등 부위의 열감을 가라앉히고 굳은 부분을 풀어준다. 실제 갈근에는 다이제인, 푸에라린, 이소플라본이 포함돼 있어 굳은 근육을 풀고 혈행을 좋게 한다. 칡이 숙취 해소제와 갱년기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것도 열을 내리고 굳은 것을 푸는 작용 때문이다. 이런 칡의 효능은 이미 양방의 여러 조사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형상은 비록 얽혀 있으되 실제 그 약효는 묶인 것을 풀어주는 칡. 태종이 칡의 효능만 제대로 알고 있었어도 견비통 없이 ‘백년(百年)’까지 ‘만수(萬壽)’를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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