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 이 글이 적힌 신문도 원자로 되어 있고, 신문을 읽는 당신도 원자로 되어 있다. 원자의 구조는 단순하다. 가운데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들이 돈다. 태양과 그 주위를 도는 행성들로 이루어진 태양계와 비슷하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성자 수에 따라 원자의 종류가 정해진다. 양성자가 하나면 수소, 2개면 헬륨, 8개면 산소, 이런 식이다. 양성자의 수를 원자번호라고 한다. 지금이라면 양성자 하나 있는 원자에 ‘수소’가 아니라 ‘1번’이란 이름을 붙였을 거다.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는 대부분 원자번호 1번인 수소다. 구조가 가장 간단해서 그렇다. 두 번째로 많은 원자는 2번 헬륨이다. 이 둘을 합치면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100%가 된다. 그럼 나머지는 뭐냐고? 나머지를 다 합쳐봐야 오차 정도의 양에 불과하다. 이 오차에 탄소, 산소, 질소, 금 같은 익숙한 원자 대부분이 포함된다. 원자번호가 클수록 많은 양성자를 좁은 핵 안에 욱여넣어야 하므로 만들어지기 어렵다. 그래도 92번 우라늄까지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93번부터는 불가능하다.
‘우라늄’이라면 낯익은 이름이다. 우라늄 원자핵에 중성자를 넣어서 핵이 둘로 쪼개지면 원자폭탄이 된다. 핵이 쪼개지는 대신, 핵 내부에서 전자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베타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 이 경우 원자번호가 하나 커진 93번의 새로운 원자가 만들어진다. 1940년 원자핵실험에서 93번 ‘넵투늄’이 발견되었다. 넵투늄에서 또 한 번 베타붕괴가 일어나면 94번이 만들어진다. 북한 핵 관련 뉴스의 단골 메뉴 ‘플루토늄’이다. 우라늄, 넵투늄, 플루토늄은 태양계의 행성 천왕성(우라누스)과 해왕성(넵튠), 왜행성 명왕성(플루토)의 이름을 차례로 딴 것이다.
1946년부터는 94번 플루토늄에 중성자 대신 알파입자를 때려 넣는 실험이 시작되었다. 알파입자는 양성자 2개, 중성자 2개로 구성된 입자다. 그래서 두 개를 건너뛰어 96번 ‘아메리슘’ 원자가 만들어졌다. 96번 원자는 불안정하여 스스로 붕괴하며 95번 ‘퀴륨’으로 변환되었다. 이후 일사천리로 101번까지 만들어진다. 새로 발견된 원자의 이름은 발견자가 짓는 것이 관례다. 1955년 미국 연구팀은 101번 원자에 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 과학자 멘델레예프의 이름을 따 ‘멘델레븀’이라 명명하였다. 그 당시가 냉전시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원자는 그 양이 너무나 적기 때문에 그 존재로만 의미가 있다. 101번 원자를 만들려면 99번 원자가 필요하다. 당시 99번 원자를 얻기 위해 94번 플루토늄에 알파입자를 쏘는 실험을 3년간 계속해야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멘델레븀은 초기에 불과 원자 17개였다고 한다. 현미경으로 봐도 안 보였다. 1960년부터는 원자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이 도입된다. 102번 원자를 만들기 위해 23번과 79번을 융합하는 거다(23+79=102).
103번까지는 오직 미국만이 새로운 원자를 만들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소련(현 러시아) 두브나 연구소에서 104번 원자를 발견했다는 발표를 한다. 원자사냥에서 미국과 소련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 경쟁에 독일 다름슈타트 연구팀까지 가세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진다. 원자 발견의 우선권에 대한 논란 끝에 1996년 104번부터 109번까지 원자의 이름이 결정되었다. 여기에는 두브나 연구소의 이름을 딴 두브늄(더브늄·105번), 미국 연구팀의 책임자 글렌 시보그의 이름을 딴 시보귬(106번)이 포함되었다. 곧이어 발견된 110번은 ‘다름슈타튬’으로 정해졌다.
최근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은 새로 발견된 4개의 원자 이름을 공시했다. 이로써 118번 원자까지 모두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국내에서는 뉴스가 되었는데, 113번 원자의 이름이 ‘니호늄’이기 때문이다. ‘니혼’은 ‘일본(日本)’의 일본식 발음이다. ‘일본’이 원자 이름으로 정해졌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한국인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니호늄’은 양성자가 113개 있는 원자다. 그뿐이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세 번째 행성이다. ‘지구’라는 이름은 우리가 임의로 정한 거다. 이름에 연연하기보다 피나는 노력 끝에 새로운 발견을 한 과학자들에게 박수를 쳐줘야 하지 않을까. 정작 부러워해야 할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들의 ‘과학기술력’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