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스타 오션’ 시리즈를 처음 만난 건 1996년이었다. 당시 최대 용량인 48Mbit 롬팩을 활용한 몇 안 되는 작품이자 슈퍼패미콤의 마지막을 장식한 명작 중 하나였다. 당시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와 함께 최고 수준까지 용량을 사용한 게임으로 방대한 콘텐츠와 몰입도를 높인 음성, 그리고 독특한 세계관과 이야기 등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전투 부분은 꽤나 인상 깊었다. 턴제 방식의 게임과 달리 캐릭터들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며 싸웠고 강력한 스킬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역전을 이끌어내는 재미도 뛰어났다. 격투 게임과 같은 느낌의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 흡사하면서도 자유롭게 공간을 이동하면서 싸우는 방식은 그 동안의 일본식 RPG와 다른 새로운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이 시리즈는 일본식 RPG의 대표 주자로 자리 매김 했고 이후 플레이스테이션용 ‘스타 오션 더 세컨드 스토리’를 시작으로 총 9개의 시리즈와 리메이크, 외전이 등장했다. 때문에 시리즈의 최신작이자 현세대기로 처음 등장하는 스타 오션5의 출시는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자막 한글화라는 경사까지 겹치면서 필자의 기대작 상위권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게임은 필자의 기대와는 다른 실망스러운 작품이 됐다. 어떻게 보면 팬의 입장에서는 거의 배신에 가까운 결과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더욱 답답한 건 한때 개발력으로는 최상에 손꼽히던 트라이에이스가 왜 이런 아쉬운 결과물을 낼 수밖에 없었을까 라는 점이다. 정말 그 대단했던 트라이에이스가 말이다.
우선 가장 문제가 됐던 부분은 시리즈의 장점이자 백미였던 전투 부분의 실망이다. 이 게임의 전투 시스템은 기본적으로는 가위 바위 보와 비슷한 구성을 띄고 있다. 강 공격은 가드를 무너뜨릴 수 있지만 약 공격에 캔슬 당하게 되고 약 공격은 가드에 막히지만 강 공격을 쳐낼 수 있다. 가드가 성공할 때는 카운터 공격을 사용해 적에게 충격을 주게 된다.
쉽게 말하면 이 3가지 상황이 맞물려 좀 더 전략적인 측면의 전투 재미를 제공, 한 차원 나아진 재미를 게이머들에게 전달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결정적인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스킬과 다수가 등장하는 전투 환경, 그리고 요란한 연출이다. 이 요소들이 더해져 전투의 재미는 그야말로 산으로 가버린다.
가위 바위 보 시스템은 황당하게도 스킬과 다수의 아군과 적이 등장하는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반영돼 있다. 굳이 불리한 상황이 나오는 평타보다는 스킬을 쓰는 형태가 더 유용하다. 그리고 소수의 적이 나오는 초반에는 가위 바위 보가 그나마 먹히지만 중반만 가도 7명의 아군이 등장해 10마리가 넘는 적과 싸우는 상황에서는 전략이고 뭐고 없어진다.
여기에 록 온 방식으로 한 명의 적을 잡고 싸워야 하는 RPG 스러운 상황은 굳이 난전에 특화된 액션 게임처럼 제작했으면 안 생길 문제까지 만들어내며 전투의 재미를 반감 시킨다. 여기에 복잡하고 잘 보이지 않는 카메라와 아군과 적군 모두를 가려버리는 무자비한 이펙트 등이 더해져 전략적 요소는 무슨, 그냥 버튼 연타만 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고 적이 뭔가 전략적인 선택을 하고 싸우도록 유도하는 것도 아니다. 적은 매우 단순하고 몇 안 되는 패턴으로만 싸운다. 그래서 보스 정도를 제외하면 지루하고 귀찮은 느낌을 받는다. 아군 인공지능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그래서 중반 이후부터는 광역 회복과 부활을 가진 ‘미키’를 플레이어 캐릭터로 하고 나머지는 그냥 난전 속에서 싸우도록 놔둔다.
이렇게 안 하면 중, 후반 갑작스럽게 힐러가 사망해 파티 전체가 허무하게 패배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이는 전투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단순한 인공지능 때문에 생긴 문제다. 이 문제는 ‘안느’를 보호하는 임무에서 더욱 심하게 느낄 수 있다. 전투가 시작되면 모든 적들이 곧장 안느를 향해 달려가고 순식간에 제압해 버려 임무 실패가 뜬다.
'이걸 한 두 번 겪어 보면 한 동안 게임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짜증이 솟구친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새롭게 도입된 ‘심리스 이벤트 연출’은 빠르게 넘기기나 스킵 등의 기능을 지원하지 않아 억지로 끝까지 봐야 하는 상황을 게이머에게 준다. 처음에는 이해는 되지만 몇 분 이상이 되는 장면들을 넘기지도 못하고 계속 봐야 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지루함 그 자체다. 여기에 요상한 카메라 연출은 불편하고 어색함을 느끼게 한다.
이 상황 때문에 프라이베이트 액션이 귀찮고 지루한 요소가 돼 버렸다. 사실 이 요소는 장점으로도 볼 수 있지만 심리스 이벤트의 단점들로 인해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프라이베이트 액션은 1번에 한 개만 발동되기 때문에 조건에 맞췄다고 해도 다시 다른 필드로 나간 후 돌아와 수락해야 하거나 임무를 진행 후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생겼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여러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 첫 번째는 시종일관 엄청나게 흔들리는 카메라, 두 번째는 너무 느린 이동 속도와 쓸데없이 큰 맵이다. 전투에서 이미 지적된 카메라이지만 이는 필드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일단 왜 이렇게 흔들리는지 모르겠다. 이동 중에 머리가 아프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나중에 옵션에 감도 조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수치를 조정해 조금 나아진 환경으로 플레이 할 수 있었지만 이런 단순한 문제를 모르고 그냥 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에 너무 느린 이동과 커다란 맵은 지루함과 짜증의 더블 하모니로 만들어내며 게이머의 인내심을 저 밑 바닥까지 보내버린다. 콧웃음 나올 정도로 정말 별 거 없는데 어마어마 하게 크게 구성된 맵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요소다.
황당한 점은 맵의 개수 자체는 몇 개 안 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마을은 매우 크고 넓지만 상점이나 몇 개의 공간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보여지는 것 밖에 없다. 여기에 ‘발암’ 수준의 퀘스트 기능은 반복 플레이가 잦은 RPG 특성을 더욱 답답하고 불편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는 기능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느낌도 준다.
그리고 모험 요소의 중심이자 RPG에서는 재미를 기대하게 만드는 던전은 전부 일직선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보상이 좋지도 않고, 공략하는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후반으로 갈수록 심해지고 몇 개의 편의적 기능이 보강되는 걸 제외하면 나중에는 O 버튼 연타 게임이 되어 버린다. 그만큼 지루하고 답답하다. (도대체 '지루하다'는 말을 얼마나 반복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 게임을 하는 내내 '지루하다'라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 만큼만 알아 주시길 바란다.)
물론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최악 수준은 아닌 이야기나 캐릭터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프라이베이트 액션 등은 그나마 괜찮다고 평가할 수 있는 요소다. 그러나 시리즈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한 전투나 불편한 UI나 편의 요소, 쓸 때 없이 큰 맵과 개성 없는 NPC, 그리고 조약한 연출 등은 한글화라는 큰 장점으로도 막을 수 없는 단점이다.
일부는 재미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최소 중반 이상 간 후 이야기 해보는 것이 좋다. 뒤로 갈수록 이 게임의 단점은 많아지고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퀘스트, 전투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어쩌다가 트라이에이스가 이런 모습이 됐을까. 전작 역시 게이머들에게 폭풍과 같은 혹평 러시를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행보는 더욱 이해가 안 된다.
'스타오션5'는 일본식 RPG를 선호한다고 해도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이 게임은 필자는 물론 팬, 그리고 RPG를 즐기는 게이머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래도 해보고 싶다면 절대 남을 탓하지 말고 본인의 순수한 판단만으로 구입해 즐겨보길 바란다. 이후의 문제는 순수하게 자신의 선택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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