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철, 최고의 보양식은 삼계탕이다. 지금이야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귀한 인삼이 들어간 덕에 약 취급을 받았다. 더위에 찌들어 축난 몸을 추스르고 가을철에 올 몹쓸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먹던 약선 음식이었던 셈이다. 내 몸이 튼튼하면 어떤 병마도 침투하지 못한다. ‘동의보감’이나 ‘황제내경’도 질병과의 싸움에서 선제적 예방 능력, 즉 면역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인삼이 들어간 삼계탕이 보양에 최고임을 모르는 이 없었지만 높은 가격이 문제였다. 인삼 한 쪽이 금 한 쪽과 같이 거래될 정도로 비쌌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인삼 안쪽을 파내고 도라지를 넣은 후 아교풀로 붙여 판 악덕 상인의 기록도 전하고 있다.
이에 조선의 가난한 민중이 삼계탕 대신 선택한 음식은 바로 계고(鷄膏)였다. 강명길은 자신이 쓴 ‘제중신편’에서 인삼을 구할 수 없을 때 대용 음식으로 계고를 추천했다. 계고는 영계 대신 묵은 닭인 진계(陳鷄)를 넣고 도라지와 생강, 계피, 산사, 밤 등을 곁들여 끓인 일종의 닭곰탕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조선 후기 들어 서민의 음식이었던 계고가 왕실의 약선 음식으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장수 대왕인 영조는 계고를 특히 즐겼다. “정말 맛있다(眞味)”는 기본. 심지어 “너무 자주 먹어서 질린다”거나 “많이 먹어 체기가 생길까 두렵다”고 했을 정도다. 영조의 계고 사랑은 승정원일기에 40번이나 언급됐다. 소화력이 약했던 영조는 계고를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음식으로 꼽았다. 그는 계고의 효험에 대해 ‘소화력을 도와주는 특별한 음식(補益胃氣)’이라고 규정했다.
계고에는 최고의 영양을 자랑하는 조선의 재래 닭이 들어갔다. 16세기 중국의 의서 ‘본초강목’도 “약용으로는 조선의 재래 닭이 좋다”고 했다. 우리의 ‘치맥’ 문화가 우연은 아닌 셈이다.
최고의 약용 닭인 재래종 조선 닭은 어떤 특성이 있었을까. 일제가 남겨 놓은 기록을 보더라도 그 특별함은 분명히 드러난다. “한국의 재래종 닭은 그 털이 ‘갈색 레그혼’과 흡사하고, 체질이 강건하고 활발하며, 비상력이 강하다. 체중은 1.8∼2.5kg이다. 다만 산란력은 떨어져 1년간 낳는 알이 겨우 90개 정도에 불과하다.”
옛 선비들은 닭을 문무인용신의 다섯 가지 덕을 갖춘 짐승이라고 치켜세웠다. 머리에 관을 쓰고 있어 문(文), 날카로운 발톱이 있어 무(武), 잘 싸우니 용(勇), 서로 나눠 먹을 줄 아니 인(仁), 때를 알려주므로 신(信)이라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