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무 덥다.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쉽사리 적응되는 것도 아니다. 분명 내년 이맘때에도 더울 거다. 덥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비가 오면 더위가 한풀 꺾이는 것으로부터 햇빛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겨울에도 해가 뜬다. 햇빛은 지금 이 순간 지구의 여러 곳에 도달한다. 내가 오늘 아침 보는 태양은 남반구의 호주에서도 보인다. 하지만 그곳은 지금 겨울이다. 결국 더위는 햇빛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을 받은 물질에서 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지표면이 햇빛을 흡수하여 더워졌다는 뜻이다. 뙤약볕 아래 10분만 있으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지구에 내리꽂히는 햇빛은 거의 평행하다. 하지만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위도에 따라 지표가 햇빛을 받는 각도가 다르다. 이 때문에 적도는 덥고 극지방은 춥다. 우리가 사는 중위도 지역은 햇빛을 받는 각도가 계절에 따라 다르다. 여름에 지구가 태양에 가까워진다는 사람도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지구의 공전궤도가 타원 모양이지만 거의 원에 가까운 타원이다. 더구나 태양과 지구의 거리만으로 계절이 정해진다면 북반구가 여름일 때 남반구도 여름이어야 한다.
여름에는 적도에 이웃한 북쪽지역이 뜨거워진다.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이면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기포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물의 대류만으로 열을 전달하기 힘들어지면 기포라는 특급우편으로 온도차를 해소하는 거다. 뜨거운 적도 근방과 차가운 극지방 사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태풍이라 부른다. 따라서 태풍은 여름이 끝나갈 때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지표가 흡수한 햇빛의 양과 관련된다.
햇빛을 흡수하면 왜 뜨거워질까. 우리는 이제 열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맞닥뜨린 거다. 18세기 과학자들은 ‘칼로릭’이라는 입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입자가 많으면 뜨겁고 없으면 차가워진다. 그럴듯한 이론이다. 그럼 햇빛을 흡수하면 칼로릭이 생긴다는 말일까? 물체를 문지르면 열이 발생한다. 마찰열이다. 그렇다면 물체를 계속 문지르면 칼로릭이 무한히 생산된다는 말인데, 뭔가 이상하다. 그래서 럼퍼드 백작은 열의 본질이 운동이라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다. 열이 운동이라면 그 주체는 누구인가?
과학에서는 연이어 몇 번 질문을 하면 대개 미궁에 빠진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운동의 주체는 ‘원자’다. 원자의 존재가 입증된 것이 20세기 와서니까 당시 과학자들이 답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다.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 돌멩이도 예외는 아니다. 돌멩이를 낙하시키면 돌멩이를 이루는 원자가 모두 한꺼번에 움직인다. 열이 원자들의 운동이라면 낙하하는 돌멩이는 뜨거워지는 걸까? 그렇다면 KTX에 탄 사람도 뜨거워져야 한다. 그 사람의 몸을 이루는 원자들이 함께 운동하고 있으니까. 물론, 경험적으로 볼 때 이건 말도 안 된다.
뜨거운 물체의 경우 그 물체를 이루는 원자들이 더 격렬하게 운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온도에 기여하는 운동은 ‘무작위적인’ 운동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봉을 조사하여 분포를 구하면 평균과 표준편차를 알 수 있다. 표준편차는 분포의 폭과 관련된다. 이것은 자료가 평균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즉 얼마나 무작위인지를 나타낸다. 다시 KTX에 탄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 사람의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의 속도는 빨라진다. 이것은 원자 속도분포의 평균값이 커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온도를 결정하는 것은 평균이 아니라 표준편차다. 평균이 크다고 표준편차도 큰 것은 아니다.
혹자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물질적 풍요는 분명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하지만 부를 분배하는 것, 즉 분포의 표준편차를 줄이는 것은 또 다른 이슈다. 온도는 표준편차가 결정한다. 우리가 아무리 부의 평균을 높이더라도 표준편차를 줄이지 못하면 사회는 뜨거워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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