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한 사람이 마이크에 대고 “야, 인마!” 하고 소리쳤다. 곧 컴퓨터 화면에 ‘화남’이라는 문구와 함께 일그러진 표정의 이모티콘이 표시됐다. 이번엔 “나 오늘 너무 힘들었어”라고 힘 빠진 목소리로 말하자 ‘슬픔’이라는 문구와 우는 표정의 이모티콘이 나타났다. 컴퓨터가 사람의 음성 패턴을 분석해 심리 상태를 알아내는 ‘감성 정보통신기술(ICT)’이다.
27일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감성 ICT’를 개발 중인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감성인식IoT연구실을 찾았다. 감성 ICT는 목소리나 얼굴 표정, 맥박과 혈압 같은 생체신호로 사람의 심리 상태를 파악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이다. ● 머신러닝 기술로 감성 인공지능시대 연다
컴퓨터가 사람의 심리 상태를 알기는 쉽지 않다. 기뻐서 지르는 환호성과 화가 나 지르는 큰 목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도록 프로그래밍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처럼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에서 답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이 모두 가르쳐주기 어렵다면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게 만드는 것이다.
ETRI 연구진이 올해 개발하기 시작한 음성기반 감성인지 기술은 언어의 뜻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의 톤과 억양 등을 분석해 심리 상태를 파악한다. 의미가 통하지 않는 엉뚱한 말을 해도 심리 상태는 유추할 수 있다.
연구진은 목소리뿐 아니라 피부전기전도도(GSR), 피부 온도, 심박(PPG) 등 생체신호를 이용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손목에 찬 스마트 밴드나 속옷에 부착한 소형 센서로부터 얻는다. 심리 상태에 따라 바뀌는 신체 변화를 읽어낸 컴퓨터가 사람의 감정을 스스로 구분할 수 있게 되는 식이다.
가령 ‘공포’를 느낄 땐 교감 신경에 의해 혈관이 확장되고, 땀 분비가 덩달아 늘어나면서 피부 온도가 낮아진다. 사람들에게 공포 영화를 보여주는 등의 방법으로 생체 신호를 수집하고, 인공지능 학습을 통해 공통된 패턴을 찾아내는 식이다. ETRI 연구진은 이 밖에도 불쾌, 불안 등 여러 심리 상태에 따른 생체 신호의 패턴도 학습시켰다.
신현순 ETRI 감성인식IoT연구실장은 “본래 군인들의 정신건강 보호를 위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며 “철모나 군화, 시계 등 군인들이 반드시 착용하는 장비에 센서를 부착하면 병사들의 심리 상태를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위험 상황 알아채는 CCTV로 안전 지킨다
감성 ICT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정보통신기기가 사람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다면 기분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가 나 집에 들어갔을 때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고, 추위를 느끼고 있다면 집 온도를 자동으로 올려준다. 홀몸노인의 심리 상태를 가족들에게 알려주는 서비스나 운전자의 피로를 파악해 졸음운전을 막아주는 안전 운행 보조장치 등의 개발에도 쓸 수 있다.
ETRI 연구진은 이 기술을 폐쇄회로(CC)TV에 접목한 ‘감성 CCTV’도 개발했다. 골목길 등에 설치하면 사람의 이동경로를 영상으로 촬영한다. 이때 사람이 속옷이나 손목에 센서장치를 부착했다면 심리 상태 정보까지 전달받는다. 만약 크게 다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이 생기면 동시에 녹화된다.
신 실장은 “생체신호와 영상 분석을 종합해 사용자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과 가까운 경찰서에 알려 위험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방효찬 ETRI IoT융합연구부장은 “감성 ICT는 활용 가능 분야가 많은 만큼 빠르게 정보통신기술 분야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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