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화장품’ 발랐는데 얼굴이 왜 따끔거리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8일 03시 00분


시판 천연 화장품 살펴보니

천연 유기농 원료를 사용했다고 홍보한 한 화장품의 전체 성분에 살균·소독 기능을 하는 화학 성분이 적혀 있다. 화장품 업체 홈페이지 캡처
천연 유기농 원료를 사용했다고 홍보한 한 화장품의 전체 성분에 살균·소독 기능을 하는 화학 성분이 적혀 있다. 화장품 업체 홈페이지 캡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봐 온 대학생 윤모 씨(23·여)는 최근 화학 성분을 멀리하고자 ‘천연 화장품’을 구입했다. 지방의 한 특산품에서 추출한 성분을 담은 무방부제 화장품이라는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화장품을 사용한 뒤 얼굴이 따끔거리더니 며칠 후엔 붉은 종기와 반점이 올라왔다. 뒤늦게 성분을 확인해 보니 화장품점이 자랑하던 천연 원료의 함량은 1%도 되지 않았고, ‘무방부제’라는 광고와 달리 살균·보존제가 들어 있었다. 화장품 사용을 중단하자 피부는 곧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윤 씨는 천연 화장품을 볼 때마다 의심이 든다.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윤 씨처럼 천연 화장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지만 그중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도 적지 않다. 더구나 화장품의 경우 1%의 식물성 성분이 포함돼도 ‘천연 화장품’ 또는 ‘자연주의 화장품’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시중에서 판매되는 천연 화장품이 100% 천연 제품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현재 국내엔 어떤 화장품을 천연 화장품이라고 표기하거나 광고할 수 있는지 공식적인 기준도 없다. 0.1%도 되지 않는 천연 원료를 사용한 뒤 ‘천연 화장품’이라고 광고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시판 중인 천연 화장품 전문 업체 5곳의 제품을 살펴보니 인증기관으로 내세운 곳은 미국 시민단체인 환경운동그룹(EWG)과 국제향료협회(IFRA) 등 제각각이고, ‘○○화장품연구소’ 등 검증되지 않은 국내 사설 업체를 마치 공인 인증기관처럼 홍보한 사례도 있었다. 한 업체 관계자는 “국내엔 별도의 인증 체계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해외 기준을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살균·보존제 정보다. 식약처 ‘화장품 안전 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화장품에 사용할 수 있는 살균·보존제는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등 64종으로 제한돼 있다. 이들 성분은 제품에 적게는 0.002% 이상 사용할 수 없도록 엄격히 제한돼 있고 ‘씻어 내는 제품에만 사용할 것’, ‘3세 이하가 쓰는 제품엔 사용하지 말 것’ 등 용도가 명확히 구분돼 있다. 피부에 직접 닿는 화학 성분을 국가가 책임지고 검증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주목적이 살균·보존이 아닌 화학 성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선 명확한 제재 기준이 없다. 예컨대 제품 변색을 늦추는 ‘디소듐에틸렌디아민테트라아세트산(디소듐EDTA)’이나 다른 성분이 피부에 잘 흡수되도록 돕는 ‘헥산디올’ 등 화장품에 흔히 쓰이는 화학 성분은 살균·보존 기능도 겸하지만 함량이나 사용법에 대한 기준은 없다. 실제로 “화학 성분 대신 감귤·녹차 추출물이 방부제 역할을 한다”라고 홍보한 한 천연 화장품의 전체 성분을 뜯어보니 디소듐EDTA와 헥산디올 등이 들어 있었고, 함량 정보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식약처는 천연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늘자 부랴부랴 내년 2월까지 업계·학계와 협의해 명확한 기준과 인증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무방부제’로 광고하는 화장품 중엔 미처 살균·보존 기능이 파악되지 않은 성분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고, 보존 기간이 짧아 미생물 번식 가능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있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신다은 인턴기자 연세대 국제학부 4학년
#천연#화장품#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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