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소크라테스는 될 수 있을지언정, 에어컨 없는 소크라테스는 되기 힘든 요즘 날씨다. 고등학생 시절 에어컨 없는 교실에서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들었다. 선풍기 바람이 잘 드는 자리를 두고 싸우던 기억이 난다. 요즘엔 에어컨 없는 여름을 상상하기 힘들어졌다.
주위에 비해 온도를 높이거나 낮추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온도를 높일 때 에너지가 필요한 것은 알 것 같다. 허나, 온도를 낮추는 데 왜 에너지가 필요할까. 온도가 에너지와 관련 있다는 것을 모르면 생기지도 않았을 의문이니, 아는 게 병이라 할 만하다. 6개월 전 그러니까 올 2월 9일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3.9도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의 조성은 같다. 하지만 지금의 복장을 한 채 그때로 돌아가면 거리에서 1분도 버티기 힘들 거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2월 9일의 공기는 지금의 공기에 비해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온도는 공기의 움직임이 클수록 높다. 물리적으로 움직임은 ‘속도’로 나타내며, 속도가 크면 운동에너지가 크다. 따라서 온도를 낮추려면 운동에너지를 제거해야 한다. 에너지는 보존될 뿐 없어지거나 생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에너지를 제거한다는 말보다는 공기의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이동하는 에너지를 ‘열’이라고 부르니까, 누군가 공기로부터 열을 흡수해야 하는 거다.
열을 받으면 화가 난다. 요즘 같은 날씨라면 이 말의 의미가 단박에 이해된다. 열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물에 열을 가하면 물이 끓는다. 온도가 높아지는 거다. 물에 에너지를 주면 물을 이루는 분자들의 운동이 격렬해진다. 운동에너지가 커지는 거라고 해도 된다. 하지만 끓는다는 것은 또 다른 현상을 내포하고 있다.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것 말이다.
수증기는 기체다. 물 분자들이 제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상태다. 액체 상태의 물 분자는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에 비유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 끈적끈적하게 얽혀 있다. 이들 사이의 연결을 끊으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열을 가해야 한다는 말이다. 액체가 기체가 되려면 열이 필요하고, 기체가 액체가 되면 열을 내놓는다. 다시 에너지보존법칙이다.
이제 에어컨 이야기로 돌아오자. 에어컨의 원리는 정말 간단하다. 집 안의 공기에서 열을 빼앗아, 집 밖에 내놓으면 된다. 결국 집 안에서 집 밖으로 열을 이동시키는 거다. 열을 이동시킬 전달자가 필요한데, ‘냉매’라고 부르는 물질이다.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프레온’이 냉매의 한 예다. 집 안에서는 냉매가 액체에서 기체로 변하며 집 안의 열을 흡수한다. 사실 그 상태로 집 밖에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는 냉매를 재활용하길 원한다. 그렇다면 냉매가 가진 열만 버려야 한다. 집 밖에서 냉매가 기체에서 액체로 변하면 열을 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 냉매를 다시 집 안으로 들여오면 그만이다.
냉매를 관에 넣어 집 안팎을 계속 오가도록 하면 된다. 문제는 의외의 곳에 있다. 집 안의 열을 흡수한 냉매가 기체 상태로 집 밖으로 나갔을 때, 액체로 되며 열을 방출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쉽게 일어날까. 물론 온도를 낮추면 기체가 액체로 된다. 하지만 그러려면 에어컨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이 에어컨이다. 여기서 열역학 지식이 필요하다. 압력을 높이면 냉매가 쉽게 기체에서 액체로 된다.
압력이 높아지면 기체를 이루는 분자들이 가까워진다. 압력을 가한다는 것은 누른다는 말이다. 그러면 분자들 사이에 끊어졌던 끈끈한 관계가 되살아나기 쉬워진다. 액체가 되기 쉬워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집 밖으로 나가는 냉매는 압축기를 통과하게 된다. 기체를 압축하는 데 모터를 사용하며 이것 때문에 막대한 전기료가 든다. 냉장고의 소음도 이 때문이다. 냉장고의 원리는 에어컨과 같다. 단, 집 밖이 아니라 집 안에다 열을 버린다. 따라서 냉장고 문을 열어두면 방이 오히려 더 더워진다. 냉장고를 에어컨으로 쓰려면 냉장고 뒤에 달린 방열판(放熱板)을 집 밖으로 옮겨 실외기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냉장고 덕분에 음식이 상할 걱정을 안 해도 된다. 하지만 냉장고가 점점 거대해지며 필요 이상의 식재료가 쌓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우리가 자발적으로 대형마트의 물류창고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수도 있다고 한 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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