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펠레의 저주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 같습니다. 축구 황제라 불릴 만큼 축구팬들에게 인정을 받는 펠레가 월드컵이나 유로 같은 국가 대회에서 우승 후보로 지목한 팀은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는 등 항상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생긴 말이죠. 이번 유료 2016에서도 펠레는 프랑스를 우승 후보로 꼽았지만, 펠레가 4강 이상은 힘들다고 예측했던 포르투갈이 프랑스를 꺾고 우승을 거둬 펠레의 저주의 강력함을 뽐냈습니다. 펠레 본인은 사람들이 틀린 것만 기억한다며 억울해하고 있지만, 이 정도 적중률이라면 절대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런데, 펠레의 저주 만큼이나 강력한 저주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게임 표지 모델의 저주입니다. 그 해 최고의 선수들에게만 허락된다는 표지 모델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표지 모델로 선정된 선수들이 구설수에 오르거나 부상으로 성적이 하락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어 선수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다네요.
가장 대표적인 게임 표지모델 저주 시리즈는 EA의 매든 시리즈입니다. 1989년 처음 등장한 미식축구 게임인 매든 시리즈는 미식축구를 즐기는 미국을 기반으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게임인데요. 첫 시리즈의 출시 이후 1998년까지는 NFL의 현역 선수와 감독, 그리고 해설가로도 커리어를 이어온 존 매든으로 커버를 장식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NFL의 현역 선수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게임의 표지를 장식한 선수들은 하나같이 부상을 당하거나 기량 이하의 성적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현지에서는 '매든의 저주(Madden Curse)'라는 이야기까지 생겨났습니다.
'매든의 저주'는 피해간 선수가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정말 강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매든 1999에서 현역 선수 중 첫 모델을 표지모델을 장식한 러닝백 게리슨 허스트는 애틀란타 팔콘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발목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다음 두 시즌을 놓쳤습니다. 매든 2000의 표지모델인 러닝백 배리 센더스는 표지모델로 선정됐음에도 돌연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덕분에 매든의 표지 모델 중 부상을 당하지 않은 선수로 오랜 기간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표지모델저주03
매든 2001의 표지모델인 러닝백 에디 조지는 발가락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날렸고, 이후에도 급격한 기량 하락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매든 2002의 모델인 쿼터백 단테 컬페퍼는 무릎 부상을 입었고, 이후에도 부진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2002년에 출시된 매든 2003의 표지 모델로 나선 러닝백 마샬 펄크는 2002년 부상으로 인해 경기를 날리고, 한 시즌에 2,000야드 이상 돌진한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매든 2004의 모델인 쿼터백 마이클 빅은 2002년 시즌에서 24번의 터치다운과 3천 야드를 패스로 따내며 최고의 쿼터백으로 이름을 올리며 2003년을 자신의 시즌으로 만들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매든의 저주 때문일까요? 종아리 부상으로 시즌 16경기 중 11경기를 날렸으며, 한참 뒤인 2007년에는 불법 투견 도박 혐의를 인정하기도 했죠. 매든 2005의 모델인 레이 루이스는 뛰어난 수비로 고평가를 받아 표지모델에 올랐으나 2004년 시즌 단 하나의 인터셉트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매든의 저주는 계속됩니다. 매든 2006의 모델인 쿼터백 도노반 맥냅은 부상으로 7게임을 놓쳤고, 매든 2007의 모델인 러닝백 숀 알렉산더는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매든 2008의 모델인 쿼터백 빈스 영은 매든의 저주를 비웃었으나 사두근 부상으로 시즌 초반을 날렸고, 매든 2009의 모델이자 NFL 역대 최고의 쿼터백 중 하나로 평가받는 쿼터백 브렛 파브는 여전했던 성적과는 별개로 은퇴를 번복하며 시즌에 참여하며 시즌 동안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도 은퇴를 번복해 '양치기소년'이라는 비아냥이 이어지기도 했죠. 하지만 더 큰 사건은 2010년에 터졌는데요. 매든 2009 모델에 선정된 2008년 시즌 당시 미모의 치어리더에게 음란한 메시지와 음성 메일, 선정적인 사진 등을 보냈다는 성희롱 의혹이 터졌습니다. 성희롱 여부와 별개로 조사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던 그는 5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지요.
매든 2010에서는 두 명의 선수가 모델로 나섰는데요. 래리 피츠 제럴드와 트로이 폴라말루 선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다행히도 '매든의 저주'는 한 명에게만 해당 되는 것인지 트로이 몰라말루 선수는 무릎 부상으로 5경기에 나선 것에 그쳤지만, 래리 피츠 제럴드 선수는 부상 없이 좋은 시즌을 보냈지요.
매든 2011의 모델인 쿼터백 드루 브리스는 최악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기량에 한참 못 미치는 모습을 보였고, 매든 2012의 모델 페이튼 힐리스는 시즌 내내 부상으로 방해를 받았으며 그가 거둔 성적은 지난해의 절반 정도에 그쳤습니다. 매든 25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매든 25에서는 전 시즌 NFL 최우수 선수의 상을 받은 아드리안 피터슨 선수가 표지모델로 선정됐으나, 발 부상과 꾸준히 투쟁을 펼쳐야 했고, 팀의 성적도 다시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2013년 캘빈 존슨과 2015년 리처드 셔먼, 2016의 오델 베컴 주니어처럼 저주가 비교적 약했던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 전의 적중률이 너무 대단하다 보니 무섭네요. 과연 올해 표지모델인 롭 그론코우스키는 어떻게 될지 기대됩니다.
어떠신가요? '매든의 저주' 이 정도면 엄청나지 않나요? 하지만 여러 선수를 골(?)로 보낸 EA의 스포츠게임 표지모델 저주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모델만 되면 망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EA의 스포츠게임 표지 모델 희생양은 다른 게임 시리즈에서도 등장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시리즈가 'EA스포츠 UFC'입니다. EA는 'EA스포츠 UFC2'의 표지모델로 론다 로우지와 코너 맥그리거를 선정했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표지에 선정되자마자 EA 표지 모델 저주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론다 로우지는 게임이 발매되기도 전에 홀리 홈에게 KO 패배를 당했고, 코너 맥그리거 선수도 UFC 196 이벤트에서 네이트 디아즈에게 패배했습니다. 한 명은 타이틀을 잃었고 한 명은 본인의 연승 기록이 깨졌지요.
'EA스포츠 UFC' 표지 모델의 저주는 2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EA의 스포츠게임 표지모델 저주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명맥이 끊겨 있던 UFC 시리즈의 새로운 프랜차이즈로 등장한 'EA스포츠 UFC'의 1편의 모델에는 당시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인 존 존스와 알렉산더 구스타프손이 장식했는데요. 발매 이후 조금의 시간의 흐른 뒤 존 존스는 뺑소니와 마약 소지 혐의로 챔피언 벨트를 반납하며 무기한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UFC 200을 통해 재기하려던 그는 결국 약물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며 또 한 번 수렁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이 정도면 EA의 스포츠 게임 표지모델 자리는 그냥 준다고 해도 피해야 할 것 같지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세계 최고의 골프 선수로 이름을 날린 타이거 우즈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마저 제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렸지만, 사생활 때문에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고, '타이거 우즈 PGA 투어'라는 우즈의 이름을 딴 EA의 게임마저 명맥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경우는 게임이 피해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타이거 우즈의 뒤를 이어 본인의 이름으로 게임을 출시한 로리 맥길로이의 모습을 보면 단순히 타이거 우즈만의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EA는 타이거 우즈의 뒤를 이을 스타로 로리 맥길로이를 선정했고, 2015년 7월 '로리 맥길로이 PGA 투어'를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EA의 스포츠 게임 표지 모델의 저주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일까요? 로리 맥길로이는 게임이 출시되기에 앞서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치는 부상을 얻고 대회에 불참을 선언합니다. 이 정도면 EA의 스포츠 게임 모델로 나서는 것이 꺼려질 만도 합니다만, 최근 EA는 '피파17'의 모델을 게이머의 손으로 직접 뽑아 달라며 저주의 마수를 뻗칠 대상을 게이머들이 직접 선정하도록 하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팬들의 투표를 통해 이번 모델로 결정된 도르트문트의 마르코 로이스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걱정됩니다!
EA의 게임이 아니어도 표지 모델의 저주는 계속됩니다. 한때 최고의 야구 게임으로 꼽히던 하이히트 베이스볼 시리즈는 첫 작품인 2001을 새미 소사와 함께 했습니다. 아예 게임 제목까지 새미 소사의 하이히트 베이스볼 2001이었죠. 당시 마크 맥과이어와 홈런 레이스를 벌이던 선수였던 만큼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만, 2003년에 코르크로 반발력을 높인 부정 배트를 사용했다는 것이 발각되면서 2004년부터 성적이 급락합니다. 그 당시 EA의 MVP 베이스볼 시리즈를 누르고 최고의 야구 게임으로 꼽히던 하이히트 베이스볼 시리즈가 3DO의 몰락으로 인해 2004 버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소름 돋는 결과입니다.
현재 최고의 야구게임으로 꼽히는 'MLB 더쇼' 시리즈의 역대 표지모델도 표지모델의 저주에 빠져든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MLB 더쇼' 시리즈의 표지모델 저주는 시리즈 초반부터가 아니라 후반부터 등장한 것이라 인상적이긴 합니다.
더쇼의 초창기 표지모델들은 표지 모델로 선정된 이후에도 준수한 성적을 보여줬습니다. 대표적으로 뉴욕메츠의 3루수 데이빗 라이트의 경우에는 2006년에 타율 0.311, 출루율 0.381, 장타율 0.531, OPS 0.912에 181안타, 26홈런, 116타점, 20도루를 남기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MLB 더쇼 07'의 표지 모델로 발탁됐고, 2007년 시즌에는 타율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기록을 뛰어 넘었고, 30-30클럽에도 가입하며 리그 MVP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올렸습니다.
이후 'MLB 더쇼 08'의 모델로 나선 라이언 하워드는 MVP 5위에서 2위로, 'MLB 더쇼 09'의 모델로 나선 더스틴 페드로이아의 경우 성적이 소폭 하락했으나 타율 296에 48개의 2루타와 20개의 도루 등을 기록하며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작품에서는 표지모델의 저주라 불러도 될 만큼 선수들의 하락이 눈에 띕니다. 'MLB 더쇼 10'에 이어 'MLB 더쇼 11'의 표지모델로 나선 조 마우어는 부상으로 고작 82경기에만 나설 수 있었으며, 홈런은 고작 3개, 타점은 30개에 불과했습니다. 'MLB 더쇼 12' 캐나다 버전의 표지모델인 호세 바티스타는 심각한 부진을 겪었습니다. 2011년 43홈런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 그는 2012시즌 부상으로 92경기에 출장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그나마 장타율 0.527, 홈런 27개를 기록하며 위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MLB 더쇼' 표지모델의 저주는 코리안 메어저리거들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MLB 더쇼 14'와 'MLB 더쇼 15'의 국내 버전 표지모델로 선정된 추신수 선수는 2013년 신시네티에서 20-20클럽에 가입한 것은 물론, 출루율 0.423, 득점 107점 등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텍사스로 둥지를 옮겼습니다. 2014년 텍사스에서 첫 시즌을 맞은 추신수 선수는 출루율이 0.340에 그치며 풀타임 메이저리거 활약 이후 최악의 출루율을 기록했습니다. 타율은 0.242까지 떨어졌지요. 2년 연속 모델을 했기 때문일까요? 추신수 선수는 2015년에도 시즌 초반 극심한 슬럼프를 겪으며 쉽지 않은 시즌을 보냈습니다.
지난해 부상만 아니면 신인왕에도 도전했을 법한 강정호 선수도 'MLB 더쇼' 표지 모델의 저주를 받은 것일까요? 'MLB 더쇼 16'의 국내 버전 표지 모델로 나선 강정호 선수는 최근 경기 성적과는 별개인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게임 표지모델의 저주 때문일까요? 위의 사례처럼 게임의 표지 모델로 나선 선수들의 경우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제 기량에 못 미치는 성적을 보여왔는데요. 과연 이것이 표지모델의 저주일까요? 아니면 단순한 우연일까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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