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의 실록한의학]폭염에 시달린 영조… 말 분변 말려서 끓인 ‘마분차’를 마신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2일 03시 00분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살인적인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더위 나기는 조선시대 임금도 힘들었다. 영조(1694∼1776)는 재위 원년에 혹독한 여름 더위 후유증에 시달렸다. 기록에 따르면 영조는 복통을 동반한 설사와 기침, 콧물, 재채기 등의 감기 증상이 계속돼 고생했다.

영조는 자신의 생활습관을 분석한 뒤 원인을 찾아냈다. 영조가 지목한 원인은 혹서를 피하려고 탐닉한 차가운 음료와 과일이었다. 승정원일기는 온산보중(溫散補中)으로 치료법을 잡았다고 전한다. ‘온기로 한기를 흩고 내부를 보호해준다’는 뜻이다. 처방된 삼소음(蔘蘇飮)과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도 이 같은 원리로 작용한다. 두 처방 모두 지금도 여름 감기에 자주 사용된다.

이후 영조는 더위 나기 예방책으로 음력 섣달 말의 분변을 건조시켜 끓인 ‘마통차’ 혹은 ‘마분차’를 마셨다. 왕이 이런 음식을 좋아할 리 없었겠지만 증상을 치료하고 예방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마분차는 요즘으로 치면 감기 백신과 비슷했다.

동의보감은 “여름철이 몸을 조섭하기 가장 힘들다. 차가운 음식을 입에 대지 마라. 배 속이 늘 따뜻하면 모든 병이 생기지 않으며 혈기가 왕성해진다”고 여름철 건강법을 소개했다. 최근 중국 장자제(張家界) 등산에 나선 필자는 장수마을로 소문 난 현지인의 식습관을 보고 동의보감의 뜻을 새삼 이해할 수 있었다. 40도에 육박하는 불볕더위에도 차가운 물을 전혀 먹지 않았다. 객실에도 냉장고가 없었다. 등산객들이 “찬물을 달라”며 항의하자 호텔 직원은 오히려 “더위 때문에 몸이 너무 힘들어하는데 왜 건강에도 안 좋은 찬물을 찾느냐”며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줬다. 더운 인도에서도 체온 이하의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이 건강의 기본 법칙이다.

혹서에도 찬 음료와 빙과류를 탐닉하지 않아야 건강한 여름 나기를 할 수 있다. 코와 목덜미로 파고드는 에어컨의 바람은 잠깐의 ‘피서’가 되겠지만 오랫동안 노출되는 일이 반복되면 좋지 않다. 여름이 끝나가는 시점이나 그 후에 생기는 감기 증상은 영조가 진단한 것처럼 찬 것을 탐닉한 결과라고 보면 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1년 중 알레르기비염 진료 환자가 가장 많은 달은 여름이 끝나는 9월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 이열치열(以熱治熱)은 강한 인간을 만들기 위한 자연의 담금질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말 분변#마분차#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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