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전승민]과학의 탈을 쓴 ‘유사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면역력에 대한 관심을 높였던 메르스 바이러스의 현미경 사진. 천연식품이 면역력을 높인다는 일부의 주장에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동아일보DB
면역력에 대한 관심을 높였던 메르스 바이러스의 현미경 사진. 천연식품이 면역력을 높인다는 일부의 주장에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동아일보DB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1.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서 나오는 강한 전자파는 꿀벌의 방향감각을 교란한다. 꿀벌이 수분(受粉)을 못하게 되면 참외 농사가 불가능해진다.

#2. 사람은 면역력으로 병과 싸운다. 병에 걸리면 천연식품을 먹고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최선이다.

두 이야기는 과연 옳을까. 얼핏 보기엔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꿀벌의 방향감각이 전자파의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는 일부 있었다. 인체가 면역력을 갖고 있는 병에 잘 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우선 참외 재배 지역까지 강한 전자파가 전달되지도 않는다. 만약 전달된다고 해도 농사에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개인이 가진 면역력을 식품으로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역시 근거가 부족하다. 하지만 두 이야기는 적잖은 파급효과를 냈다. 사드 배치에 깊은 불안을 나타낸 사람이 적지 않았다. 병원을 불신해 병을 키운 사람도 의외로 많다.

한발 더 나아가면 이와 비슷한 억지 주장이 아예 상식처럼 굳어지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피부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콜라겐 식품이나 화장품이다. 사람이 피부 탄력을 유지하는 데 콜라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콜라겐을 먹거나 바르면 피부 건강이 좋아질 거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콜라겐은 단백질 형태 중 하나로 분자가 커서 음식이나 화장품 형태로 흡수될 수 없다. 음식으로 먹으면 아미노산으로 분해돼 흡수되니 다른 단백질과 다를 바 없다. 화장품으로 피부에 바르면 모공으로 침투되지 못하고 그대로 씻겨 나간다. 음양오행에 따라 사람의 체질을 감별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모두 비슷한 종류다. 이 단계까지 오면 ‘유사 과학’ 또는 ‘사이비 과학’이라고 구분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유사 과학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미신’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미신은 과학기술이 발전되기 이전부터 사회적 합의에 따라 받아들여져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들이다. 무속신앙, 별점 등을 꼽을 수 있을까. 이런 경우 받아들이는 사람도 과학적 신빙성이 낮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객관적 판단가치라기보다는 사회가 공유한 ‘문화’로서 존재가치가 더 크다.

반대로 유사 과학은 교묘하게 과학을 위장해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유사 과학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휘둘려 해마다 낭비하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잘못된 정보에 속아 건강과 생명을 해쳤을까를 생각해보자. 과학의 탈을 쓴 ‘사기’와 ‘선동’은 하루속히 퇴출돼야 할 암적인 존재다.

인터넷의 부작용 중 하나가 근거 없는 정보의 급속한 파급이다. 바야흐로 유사 과학의 전성시대로 불러도 무리 없는 세상이 됐다. 세상엔 근거 없는 가짜 과학 정보가 무수히 유통되고 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제재할 방법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유사 과학의 진위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진짜 전문가의 식견을 믿는 겸허함을 배워야 할 시기다. 가짜 지식, 가짜 과학에 의구심이 든다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진짜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론’과 비교해보고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때다.

국민 모두가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확인과 검증을 우선 하는 과학적인 ‘태도’는 가질 필요가 있다. 국민의 과학 수준이 높아질수록 과학의 탈을 쓴 사기와 선동도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갈 것이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과학#유사과학#면역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