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전승민]세금 쏟아부어도 나오지 않는 노벨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6일 03시 00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출처 사이언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출처 사이언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해마다 9월 말이 되면 많은 국민이 관심을 보이는 주제가 있다. 10월 3일부터 사흘간 이어질 올해의 노벨상 과학 분야 수상자 발표다. 발표 직전까지 ‘올해는 어느 분야에서 수상자가 나올 것인가’를 놓고 다양한 예측과 분석이 나온다.

 지금 수상자를 알 수 있는 건 노벨위원회뿐이겠지만, 많은 사람이 두 분야의 연구자들을 유력 후보자로 꼽고 있다. 첫 번째는 ‘중력파’ 연구 분야다. 중력파 발견을 이끈 로널드 드레버 미국 칼텍 물리학과 명예교수, 킵 손 칼텍 이론물리학과 명예교수 등이 거론된다. 두 번째는 만능 유전자 교정기술로 불리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연구 분야다. 이 기법을 개발해 낸 조지 처치 하버드대 의대 유전학과 교수, 장펑 MIT 의공학과 교수 등이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인 학술정보 제공기업인 ‘톰슨로이터’ 역시 중력파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유력 수상 분야로 꼽은 걸 보면, 이 두 분야가 가장 ‘핫’한 연구라는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 톰슨로이터가 2002년부터 작년까지 예측했던 연구자 중 39명이 실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 두 분야는 같은 노벨상 후보로 꼽히지만 뿌리는 상당히 다르다. 중력파 연구는 순수하게 학자적인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물리적 해석에 따르면 중력에 파장이 존재한다던데, 이를 실험과 검증으로 증명해 보고 싶다’는 학구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중력파 발견에 쓰인 라이고(LIGO)란 이름의 연구시설은 건설비만 6억2000만 달러(약 6820억 원)가 투입됐다. 실제 연구비를 포함하면 1조 원이 넘는 자원이 들어갔을 것이다. 이 결과는 논문으로 발표돼 인류의 지식으로 남았다.

 반대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실용성 때문에 시작됐다. 최근 이 연구가 주목받는 까닭은 난치병 치료에서부터 식량문제 해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근본 출발부터 산업적 응용을 고려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이 기술은 흔히 3세대 유전자 가위라고도 불리며, 2세대 유전자 가위 등장 이후 불과 몇 년 사이에 개발됐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 순수기초과학 투자를 늘려야 하고, 무엇보다 대규모의 투자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물론 이런 투자가 과학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여지는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가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은 한 장의 상장보다 대한민국 과학계의 내실이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국가 규모에서, 과학 분야 역시 선택과 집중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1위에 해당하는 비용을 투자하고 있어 더 이상의 연구비 증액은 불가하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해마다 노벨상 수상 시기가 되면 ‘왜 우리나라는 노벨상을 받지 못하느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심지어 노벨상 수상을 노리고 투자 전략을 짜야 한다는 이야기도 논의된다. 그럴 때면 문득 몇 해 전 인터뷰를 진행했던, 1991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에르빈 네어 독일 괴팅겐대 교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내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세포의 신호전달 방법’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남들이 하지 않았던 새로운 학문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노벨상이라는 상장 그 자체일까, 아니면 국내 실정에 맞는 연구 분야에 집중하는 일일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사례를 보듯, 이제는 충분한 산업적 성과를 고려하면서도 노벨상을 노릴 수 있는 연구 분야가 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연구개발 투자에서, 그저 상장만을 좇아 낭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때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과학#노벨상#순수기초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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