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이름을 키보드로 입력한다. 이후 투명한 원통형 캡슐 모양의 수술대에 환자가 눕는다. 인공지능(AI)이 환자의 성별, 나이, 몸무게, 키, 질환 진행 단계 등을 스캐닝한 후 로봇 팔로 수술을 시행한다….
2154년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영화 ‘엘리시움’의 한 장면이다. 미래의 수술실은 어떤 모습일까? 인공지능이 수술을 하는 모습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이지만 이미 세계 선진 병원들은 수술실부터 한 단계씩 미래의 모습으로 진화시키고 있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수술실 통합 시스템을 구축한 유럽 병원들을 방문해 병원의 미래를 점검해 봤다. 수술실 통합시스템 SI 현장 가 보니… 터치 하나로 수술실 모든 장비 조종
19일 오후 3시(현지 시간) 독일 함부르크 시내의 ‘아가플레시온 디아코니’ 병원. 수술실 복장과 마스크, 위생모자까지 착용한 후에야 수술실을 방문할 수 있었다.
수술장 중앙엔 ‘태블릿PC’처럼 생긴 장치가 보였다. 수술실에 동행한 병원 수간호사 마틴 우터눌렌 씨는 “수술실 통합 시스템 ‘SI’를 조작하는 터치 패널”이라고 설명했다.
‘SI’는 수술실 내 모든 의료기기를 네트워크로 통합한 시스템이다. 기존 수술실에서는 의료진이 내부를 이리저리 오가며 개별 의료 장비를 일일이 작동시켰지만 SI는 중앙에 연결된 터치패널 화면 속 애플리케이션을 누르면 수술실 내 모든 의료기기를 한 번에 조작할 수 있다. SI를 개발한 올림푸스에 따르면 현재 미국 독일 등 전 세계 병원 1000여 개의 수술실에 SI가 도입됐다. 올림푸스 측은 “한국에도 곧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곳 아가플레시온 디아코니 병원 역시 2011년에 7개 수술실 모두에 ‘SI’를 설치했다. 우터눌렌 씨는 수술실 통합 시스템을 스마트폰에 비유했다. 과거 휴대전화, 카메라, MP3플레이어, 게임기를 각각 들고 다녔다면 현재 스마트폰으로 한 화면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듯 수술실 내 모든 기기가 통합됐다는 의미다.
“수술대에서 각종 기기를 조작하러 이리저리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어요. SI를 도입 뒤 전체 수술 시간이 10∼30% 단축됐습니다.”(우터눌렌 씨)
그는 시범을 보였다. 일반 수술실에서 복강경 수술을 하려면 각종 조명을 수술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 또 내시경 투입 환자의 복부에 공기를 투입하는 등 복압도 조절해야 된다. 내시경 촬영 장면 모니터, 전기 메스 사용 시 발생하는 연기를 제어하는 장비 등 수많은 의료기기를 특정 수술에 맞춰 세팅한다.
이 같은 준비는 각각의 질환은 물론 담당 집도의의 미세한 수술 진행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수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SI는 질환의 종류는 물론 집도의의 수술 스타일까지 반영해 미리 모든 의료기기에 설정해 저장한다. 이후 패널을 한번만 터치하면 미리 설정된 특정 수술실 세팅이 바로 조성된다. 병원 측은 “설정값을 1000개까지 저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에게는 마취시간 줄이고 감염 위험성 낮춰
수술 환자의 안전성도 높아졌다. 우터눌렌 씨는 “복강경 수술을 하다 보면 개복 수술로 전환해야 하는 응급상황이 발생하곤 한다”며 “우왕좌왕할 필요 없이 SI를 통해 바로 수술실 전체가 위급상황 모드로 전환된다. 당연히 실수도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수술실 통합 시스템으로 의료진의 편의성만 높아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 병원에서 5년 간 7개 수술실에 SI를 도입해 운영한 결과 수술시간이 짧아지면서 환자 마취 시간이 줄었다. 환자의 회복 시간도 단축됐고 감염 위험도 줄었다. 또 수술실을 8개에서 7개로 줄였지만 수술 건수는 개원 당시보다 늘어 연간 950건이 넘는다고 병원 측은 밝혔다.
원격의료가 원활해진다는 점도 SI의 장점. SI에서는 벽면, 조명 장치 등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바로 수술 현장을 촬영할 수 있다. 이후 외부 전문의가 네트워크에 접속해 실시간으로 수술 장면을 검토할 수 있다. 안드리아스 노이 올림푸스 유럽 외과 법인(OSTE) 사업총괄 매니저는 “유럽도 한국처럼 병원들 간 경쟁이 치열하다. SI를 도입해 경쟁 우위를 가지려는 병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