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교수의 과학 에세이]유라시아판이 동쪽으로 이동하는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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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과 한반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개천절은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날이다. 단군은 웅녀의 아들이다. 웅녀는 곰이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은 채 마늘과 쑥만 먹고 인간이 됐다고 한다. 물론 현대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마늘이 중국에 전해진 시기는 기원전 2세기경이라 고조선 당시 우리나라에 마늘이 있었는지조차 확실치 않다. 한 국가의 시작을 두고 하늘이 열렸다고 표현한 것은 과장임에 틀림없다. 일제강점기 민족 자존감을 고취하기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공휴일로 정한 날이니 불가피한 과장이었으리라.

 과학자의 입장에서 개천(開天)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고조선을 건국하려면 적어도 한반도가 존재해야 한다. 한반도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각은 맨틀이라는 뜨거운 물질 위에 판의 형태로 떠 있다. 마치 배가 물 위에 떠 있듯이 말이다. 지구가 달걀이라면 지각판은 달걀 껍데기 정도에 해당한다. 연약한 지각판은 움직이면서 변형되고 찢어지며 상처가 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오늘날 한반도의 모습이 완성된 것은 1억60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한반도가 속한 유라시아판은 현재 동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인도-호주판이 북으로 이동하며 우리를 더욱 밀어붙이고 있다. 두 판의 경계에는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지구적 규모에서 보면) 작은 주름이 생겨났다. 우리가 이동해가는 동쪽에는 태평양판이 버티고 있다. 그 경계에는 엄청난 힘이 축적되는데, 그 힘이 해소되며 지진이 발생한다. 이 위험한 지역에 위치한 나라가 일본이다. 유라시아판 내부에도 여기저기 ‘단층’이라 불리는 찢어진 곳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움직이며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런 단층을 활성단층이라 부른다. 최근 우리나라에 일어난 규모 5.8의 지진은 양산단층의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라시아판은 유럽과 아시아를 포함하는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물이다. 힘이 가장 강하게 걸리는 일본에서도 언제, 어떤 규모의 지진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단층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재해에 대비해 모든 건물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리스크에 대비해 얼마의 비용을 투입할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원전은 좀 다른 종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어날 재난이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라면 비용 운운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땅값이 오를 거라 예측하며 가격 폭락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억 원을 투자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이 정확히 리스크-비용 문제다. 하지만 자기 자식의 목숨을 건 러시안룰렛게임을 리스크-비용 문제로 생각할 사람은 없을 거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양산단층 근처에는 수많은 원자력발전소가 존재한다. 그 주변으로 현재 400만 명이 살고 있다. 더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든지, 원전의 안전성을 믿어 달라는 것은 400만 명의 목숨을 담보로 러시안룰렛게임을 하며 그 세부규칙에 대해 논의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다시 개천으로 돌아가자. 유라시아판은 땅의 일부다. 땅, 즉 지구는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과 함께 45억6000만 년 전쯤 만들어졌다. 행성들에 모두 땅이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양이 중력의 중심이니 태양에 가까울수록 무거운 물질이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은 무거운 암석으로 돼 있지만, 목성 이후의 행성들은 가벼운 기체로 돼 있다. 초기 지구는 화산 활동이 격렬했고, 혜성과 소행성의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지금과 같은 단단한 지각이 생긴 것은 지구 탄생 6억 년이 지난 38억 년 전쯤이다. 사실 지각판에 대해 우리가 과거를 추적해 볼 수 있는 것은 지난 5억 년 동안에 불과하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단단한 땅조차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구만으로 개천이 완성되지 않는다. 하늘이 필요하다. 하늘은 머리 위에 있는 것 같으나, 사실 우주 속에 지구가 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늘이라 부르는 것은 지구를 제외한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개천은 빅뱅이 된다. 우리가 물이라면 샘이 있듯이 이 세상 모든 것에는 빅뱅이 있다. 단군 이래 한반도에 수많은 비극이 있었지만, 원전 사고로 일어날 비극에 비하면 모두 작은 해프닝에 불과할 것이다. 이 땅에 수십 년 아니 수백 년간 인간이 아예 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개천절#유라시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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