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업 내 호칭 파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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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0월 25일 10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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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 대리' 말고 '오드리(Audrey)'로 불러주세요"


IT기업 가비아의 '오드리' 직원(오지연 대리) <출처=가비아>
IT기업 가비아의 '오드리' 직원(오지연 대리) <출처=가비아>

기업들의 직급 및 호칭 파괴가 하나의 기업문화가 되고 있다. 기업마다 이름에 바로 '님'을 붙이거나, 영어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서로를 '매니저(manager)'나 '프로(Pro)'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이러한 직급/호칭 파괴의 목적은 직급에 따른 보고 체계를 간소화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수평적 소통을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같은 직급/호칭 파괴가 오히려 직원들의 사기 저하로 이어지거나, 기업의 위계질서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호칭 파괴를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서로를 부르는 '호명'에서 시작된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호명은 단순히 관계를 시작하기 위한 수단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가정 먼저 나이와 학번, 혹은 직급이나 연차를 확인하려 한다. 이러한 정보로부터 서열을 정리하고, 이 서열을 기반으로 관계를 정의한다. 즉 누군가를 부르는 방식에는 '서열'이 가장 중요하게 개입된다.

기업에서 직급으로 상대방을 부르는 것 또한 서열 관계를 편리하게 정리할 수 있고, 동시에 업무의 책임과 역할의 한계를 파악하기 쉽기 때문이다. 모든 직원이 일사분란하게 각자의 위치에 맞는 각자의 일만 하며 효율성과 생산성을 추구하던 시절에는 이렇게 직급으로 서열화된 관계가 중요했다. 그러나 이 같은 관계 정립은 기업 업무에 중요한 가치가 혁신과 다양성으로 이동하면서 오히려 문제점으로 부각됐다.

서열을 통해 정리된 관계에는 커뮤니케이션의 우위를 점할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 동일한 발언이라도 직급이 다르면 발언 무게도 달라지고, 의사 결정 또한 서열 상의 우위에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때문에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나오기 어렵고 수평적인 의사 결정도 불가능하다.

또한 프로젝트 단위의 팀 형태 업무가 보편화되면서, 직급으로 업무 책임이나 역할을 구분하는 것도 불필요하게 됐다. 매번 팀이 새롭게 구성될 뿐만 아니라 팀장을 제외한 모든 팀원들의 업무 책임과 역할이 동일하게 강조되기 때문이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호칭 파괴는 이처럼 수직적으로 서열화된 구조를 탈피하고 수평적 구조로 전환하기 위해 시도한다. 호칭 안에 녹아 있는 '서열'이라는 코드를 제거함으로써 관계를 새롭게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기업이 이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변화는 업무적으로도, 기업 문화적으로도 긍정적인 부분들이 많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불리는 이름을 의식하여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미국의 트럭 서비스 회사인 'PIE'는 '일꾼'이나 '트럭운전사'로 불리던 직원들의 호칭을 '장인(匠人)'으로 바꿨다. 그러자 평소 56%에 달하던 배송 관련 실수가 한 달도 되지 않아 10%로 확 줄었다. 장인이라는 호칭을 의식하여 호칭에 걸맞은 행동을 한 결과다. 모든 직원을 '매니저'나 '프로'로 부르는 것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경력에 관계없이 모든 직원들이 업무 책임감을 가지라 장려하기 위함이다.

호칭 파괴는 또한 '존중'하는 문화를 만든다. 서로를 직급으로 부르다 보면 직급이 낮은 상대방을 자연스럽게 하대하게 되고, 더러는 함부로 대하게 되거나 배려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때 수평적 호칭은 서로 존중한다는 마음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논의를 이어가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등장하고 구성원들의 자존감 고취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호칭 파괴는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도 만든다. 어떤 방식으로든 서열을 정하려는 경향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직급 간의 서열뿐 아니라 동일한 직급에도 연차나 나이 등에 따른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한다. '선배', '언니', '오빠', '형', '누나' 등이 그 예다. 이런 환경에서는 서열 상의 윗사람이 리더가 되어 의사결정을 주도하기 쉽다.

기업의 호칭 파괴는 직급 간의 격차를 허무는 것보다, 이처럼 연차와 나이, 학번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밀도 있게 구성된 서열 관계를 수평적으로 개선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팀원들이 평등한 관계 속에서 업무를 진행하면, 권위 없는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다. 윗사람이라는 권위를 가진 리더십이 아닌,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팀원이 생겨 나게 된다. 누구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에서는 업무 책임감과 의욕도 향상되기 마련이다.

호칭 파괴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 '다음카카오'는 임원부터 신입까지 서로 영어 이름을 부르며, 누구라도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대부분의 업무를 서로 공유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수평적이고 열린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IT 업계의 빠른 변화 속에서 선도 기업으로 자리 잡는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CJ와 SKT는 대기업으로서는 드물게도 호칭 파괴를 시도해 성공한 기업이다. CJ는 문화 콘텐츠 산업에 뛰어들며 수직적 조직 체계가 '창의성'이라는 산업 가치와 맞지 않자 호칭 제도를 직급에서 '이름+님'으로 개편했고, 지금은 직원 간 존중과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CJ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SKT의 경우 많은 기업들이 실패한 '매니저' 호칭을 도입하여 현재 모두가 전문가이자 책임자로서 업무에 임하고 있다.

이들처럼 호칭 파괴를 시도하여 긍정적 성과를 내고 싶다면 단순히 호칭 제도를 바꾸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9월부터 '이름+님'과 '별명(닉네임)'을 병행 호칭하는 제도를 시행한 가비아는, 특히 임원들에게 호칭 사용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임원들과 부서장, 팀장들이 우선 새 호칭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기업 전체가 변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때문에 대표이사가 참여하는 임원회의에서는 모두 서로를 직급이 아닌 이름이나 닉네임을 부르며, 공식 문서나 전사 공지가 있을 때도 '대표이사'는 직함 대신 '고릴라'라는 닉네임을 사용한다. 또한 메일, 메신저와 같은 그룹웨어는 물론 모든 직원 데이터베이스에 새 호칭이 적용하는 등 비대면 상태에서도 서로를 부르는 방식에 혼란을 겪지 않게끔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

가비아 기획실 신입사원인 '샐리(Sally)'는 "호칭 제도가 바뀐 후 한동안은 상사의 닉네임을 부르는 것이 부담스러워 호칭을 생략한 채 커뮤니케이션을 하느라 처음에는 좀 힘들었다"며, "이제는 내 이름을 '~씨'가 아닌 닉네임으로 불러 주면 왠지 더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회의를 하면서도 신입이라고 위축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호칭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기업 구조를 바꾸기 위한 좋은 출발이 될 수 있지만, 그저 호칭 제도만 바꾼다고 모든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건 아니다. 호칭이란 습관인 만큼 익숙한 습관을 새로운 습관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습관에 관한 충분한 이해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저 트렌드에 따라 성급히 제도만 도입하려 한다면 성과는커녕, 커뮤니케이션의 혼란만 발생된다. 호칭 파괴를 시도하려 한다면, 시행에 앞서 호칭을 둘러싼 의미와 향후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황윤주 (hyj@gabia.com, 가비아 콘텐츠기획팀)
인하대학교에서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비아
콘텐츠기획팀에서 채널운영, 콘텐츠 제작, PR 업무를 맡고 있다. SNS와 블로그, 정보사이트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사의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IT 콘텐츠 확산에 매진하고 있다.

정리 / 동아닷컴 IT전문 이문규 기자 mun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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