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2년 만에 만난 대학 여자 후배의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취업 준비와 수습기자 생활을 이 악물고 버티느라 음식에 탐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더 비참해질 것 같아 말없이 돌아섰다. 키 175cm, 몸무게 92kg, 허리둘레 96cm가 지금의 내 모습이다. 지난 2년 사이 몸무게가 10kg가량 늘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두툼한 뱃살로 갔다. 얼굴을 만져 보니 볼도 두툼, 턱선은 온데간데없다. 첫 사회생활의 대가가 뱃살인가 싶어 서글펐다.
그로부터 2주 뒤 LCHF(Low Carbohydrate High Fat·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를 하고 체험기를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다이어트에 대해 검색을 해 보니 ‘허기 걱정할 필요도 없고 기름진 음식을 마음껏 먹으면서 살을 뺄 수 있다’는 찬양 일색의 글로 도배돼 있었다. 간혹 힘들고 위험하다는 경고문도 있었지만, 이미 다이어트 의지가 불타오르던 내겐 이런 경고가 보이지 않았다. 동아일보 디지털통합뉴스센터와 주간동아 공동기획 ‘LCHF 다이어트 7일간의 체험기’는 그렇게 ‘위험천만’하게 시작했다.
1∼2일 차: 배가 부른데 배가 고픈 건 뭐지?
다이어트 첫날. 신기하게 평소보다 조금 먹어도 금방 배가 불렀다. 베이컨 네 조각에 달걀 프라이 하나, 아메리카노 한 잔이 그날 오전에 먹은 음식의 전부였다. 정오가 지나도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 게 신기했다. 다만 이상하게 몸에 기운이 없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점심 식사 때가 되자 문제가 생겼다. 회사 식당이나 일반 음식점에서 LCHF 다이어트에 맞는 식단을 꾸리기가 어려웠던 것. LCHF 다이어트에서 권장하는 식단 구성은 하루 섭취 영양소 중 탄수화물 비중을 10∼20%에 맞춰야 한다. 따라서 고기라도 장류 양념을 한 것은 피하고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해서 먹어야 한다.
회사 주변 음식점은 주로 제육볶음과 불고기 전문점이라 적당한 식당을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맨 끝에 결국 샌드위치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햄 샌드위치를 주문한 뒤, 빵은 남기고 햄과 양상추만 꺼내 먹었다. 손으로 샌드위치 속만 꺼내 먹는 내 모습을 인근 회사 여직원들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꿋꿋하게 먹었다.
점심 식사에서 낭패를 겪은 뒤 저녁은 집에서 먹기로 했다. 메뉴는 버터에 볶은 대패삼겹살과 버섯. 평소 좋아하던 메뉴라 실컷 먹을 것 같았지만 막상 음식을 대하니 식욕이 떨어졌다. 김치나 쌈장과 함께 먹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니 속이 더 니글니글해졌다. 결국 그날 저녁 때 먹은 삼겹살 양은 고깃집 1인분 정도인 200g. 첫날 섭취한 총열량은 773Cal였다. ‘소녀시대’ 다이어트 식단인 하루 1000Cal보다 한참이나 모자랐다.
둘째 날 아침 체중계에 올라가니 91.1kg. 몸무게가 첫날보다 0.9kg 빠졌다. 아침 식사로 첫날과 같은 메뉴를 먹고 곧장 취재 현장으로 갔다. 발로 뛰는 취재가 끝나갈 무렵 기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러다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했다. 점심때 국밥집을 찾아 뼈해장국을 시켜서 고기만 건져 먹었다. 순댓국에 흰 쌀밥을 말아 먹는 다른 손님들을 보며 밥 한 숟가락과 깍두기 한 점이 간절했다.
3∼4일 차: 무기력증에 소화불량까지
셋째 날 아침부터 잠을 못 잔 것처럼 피로감이 심해졌다. 몸무게는 더 빠졌다. 다이어트 3일 만에 2.5kg이 빠져 체중계는 89.5kg을 가리켰다. 허리둘레도 2cm가 줄어 94cm. 전날과 같은 메뉴로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길에 나섰다.
지하철역에 도착하자 마치 전날 과음한 것처럼 어지러웠다. 사람들로 꽉 찬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졸음이 몰려와 꾸벅꾸벅 졸았다.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한 손에 든 채 내리는 역까지 고개를 떨어뜨렸다 깜짝 놀라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좀비가 이런 모습 아닐까.
번거롭지만 도시락을 싸기로 한 것은 집 밖에서 LCHF 다이어트용 식사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날 도시락 메뉴는 삼겹살숙주버섯볶음. 앞으로 점심 식사는 집에서 싸 온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틈틈이 간식을 챙겨 먹어 부족한 칼로리를 채우기로 했다. 기사를 마감하고 자정이 다 돼 퇴근했다. 집에 도착하니 기력이 없어 호두를 한 줌 입에 털어 넣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살 대신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 같았다.
회의감과 함께 궁금증이 밀려왔다. 도대체 이 다이어트의 원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방은 단위당 9Cal로 탄수화물과 단백질(각각 단위당 4Cal)에 비해 열량이 두 배가 넘는다. 즉 LCHF 다이어트를 하면서 평소 식사량을 유지하면 오히려 열량 섭취가 늘어난다. 이 다이어트를 옹호하는 의학 전문가들은 몸에 들어오는 열량이 늘어나는데도 살이 빠지는 마법의 비밀을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곡물이나 설탕 등으로 섭취하는 탄수화물 양을 줄이면 몸은 대체 에너지원으로 지방을 찾아 쓴다. 그 결과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을 유지하면 새로 섭취한 지방이 쌓이지 않을뿐더러 몸 안에 있는 체지방이 빠지면서 몸무게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둘째, 식욕 저하로 먹는 양 자체가 줄어든다. 지방을 많이 먹으면 렙톤이라는 식욕 억제 호르몬이 분비돼 자연스럽게 식욕이 줄고 체중 감량 효과가 극대화된다. 지금 내 몸에서 식욕 억제 호르몬이 마구마구 분비되고 있는 것일까. 입맛이 뚝 떨어진 것은 분명했다.
5∼7일 차: 부작용, 술자리의 괴로움
그러나 아무리 고통 없는 다이어트라 해도 부작용은 피할 수 없었다. 제일 먼저 변비가 찾아왔다. 다이어트 시작 셋째 날까지는 변의조차 없다가 넷째 날부터 아랫배에 신호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화장실로 달려갔으나 쉽게 마무리하지 못했다. 피곤하고 소화도 되지 않는 데다 배 속에 항상 음식물이 차 있는 불쾌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넷째 날부터는 종종 편두통이 생겼는데 신기하게도 뭔가를 먹으면 두통이 완화됐다. 음식 섭취량은 실험 기간 내내 꾸준히 늘었다.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에는 저녁 약속이 줄지어 있었다. 동아일보 페이스북을 통해 나의 다이어트 소식을 접한 친구들이 고깃집을 예약해 놓았다. 아무리 유명한 맛집이라 해도 다이어트 이후 고기는 쳐다보기도 싫어진 나를 굳이 끌고 가려는 친구들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고깃집에서는 술 한 잔이 아쉬웠다. 삼겹살 한 점에 소주 한 잔. 그 황금의 조합을 혀로 누릴 수 없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술은 탄수화물 덩어리여서 실험 기간에 절대 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친구들이 건배를 하는 동안 나는 소주잔에 물을 따라 기분만 냈다. 인내의 결과는 달콤했다. 이틀 동안 몸무게가 2.1kg이나 줄었다. 여섯째 날 몸무게 87.4kg, 허리둘레 92cm.
다이어트 시작 일주일째. 삼겸살볶음으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했다. 이제 삼겹살이 지겹다 못해 원수 같았다. 더 이상 삼겹살을 먹으면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저녁 식사 메뉴는 족발로 정했다. 반찬으로 배추 백김치가 나왔다. 다이어트 일주일째니 나에게 상을 주는 의미로 배추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첫 키스보다 달콤했다.
8일 차: 발진 부작용으로 다이어트 중단
LCHF 다이어트를 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부작용으로 온몸에 반점이 생겼다. 결국 의사는 다이어트를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LCHF 체험의 첫 목표 기간은 10일이었다. 그런데 일주일째 접어들자 몸에 이상 반응이 왔다. 몸 이곳저곳에 붉은 반점이 보이더니 8일째 접어들자 반점이 온몸으로 퍼졌다. 반점이 난 부분은 옷이나 손이 닿을 때마다 쓰라렸다. 결국 병원을 찾아 상담을 받았다. 담당 의사는 해당 다이어트의 부작용 중 하나인 ‘키토래시(알레르기처럼 피부 발진이 생기는 현상)’가 온 것이라 설명하며 가려움증도 더 심해질 것이니 다이어트를 중단하라고 권했다.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키토래시가 발생하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탄수화물 섭취가 줄어들면 몸은 체내 지방을 연소해 필요한 열량을 공급한다. 이 과정에서 지방을 연소하는 케톤이 분비되는데 갑작스레 체내 케톤지수가 높아져 발진이 생긴다. 둘째, 몸속에 쌓인 지용성 독소들이 혈관 속으로 녹아들어 히스타민이 생성되고 이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셋째, 탄수화물 제한으로 스트레스가 심할 경우 이와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다이어트 시작 전 몸무게 92kg, 현재 87kg. 일주일 새 5kg이나 빠졌다. 체중 감량 결과로만 보면 LCHF 다이어트는 효과적인 방법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의학·영양 전문가들은 해당 다이어트는 장기간 지속할 수 없고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해 어지럼증 등의 부작용이 심하다고 경고한다. 기자가 직접 경험해본 결과 LCHF 다이어트는 직장인이 지속하기도 힘들고, 자칫 건강까지 잃을 수 있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다이어트 체험이 끝난 날 저녁 그렇게 먹고 싶던 순댓국을 사 먹었다. 국밥에 곁들이는 깍두기의 신맛이 짜릿했다. 하지만 절반 이상 남기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공깃밥의 반의 반만 먹었는데도 금세 배가 불렀다. 위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기자를 진료했던 의사의 당부가 떠올랐다.
“LCHF 다이어트 부작용으로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가 늘었다. 이 다이어트는 몸에 많은 부담을 주는 만큼 식단을 천천히 바꾸고 어느 정도 감량 성과가 있으면 식사량을 줄이는 일반적인 다이어트로 전환하는 것이 좋다.”
이 다이어트를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 할 것 같다. 벌써부터 삼겹살이 떠올라 속이 니글니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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