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미국 뉴멕시코의 사막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이 폭발했다. 폭탄 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현장의 벙커 안에 있었다. 그 가운데는 엔리코 페르미(193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도 있었다. 그는 원폭의 충격파가 지나갈 때 종이 한 장을 살며시 떨어뜨리고 그 이동거리를 잰다. 그리고 폭발력이 TNT 1만 t 정도라고 예측했다. 실험 후 미 국방부는 폭발력을 알아내기 위해 막대한 인력과 시간을 투입했는데, 결과는 2만 t이었다. 페르미는 신묘한 무당이었을까? 페르미가 쓴 방법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바닷물을 컵으로 모두 퍼내려면 몇 번을 퍼야 할까? 우선 지구 바닷물의 부피를 추정해야 한다. 지구의 표면적은 4 곱하기 원주율 3.14 곱하기 지구 반지름의 제곱이다. 지구의 반지름은 6400km이고, 지구 표면적의 70%가 바다다. 부피는 면적 곱하기 깊이니까, 바다의 평균 깊이만 알면 전체 부피가 구해진다. 바다에서 가장 깊은 곳이 10km 정도다. 평균 깊이는 수 km라고 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여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수백 m는 아닐 거다. 이건 근해(近海)의 깊이니까.
평균 깊이를 대략 1km라고 하면 바닷물의 부피는 3억5000만 km³가 된다. 과학적 추정치를 보면 14억 km³ 정도라고 하니까 우리가 구한 답의 4배쯤 된다. 우리 예측이 아주 엉터리는 아니란 말이다. 이제 이 값을 컵 하나의 부피인 200mm로 나누어 주면 횟수가 나온다. 1하고 0을 24개쯤 써야 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페르미 추정은 몇 가지 정보만 가지고 답을 추론하는 방법이다. 손도 못 댈 것 같은 문제의 대략적 답을 구하는 데 유용하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촛불 집회 참석자 수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경찰은 26만 명이라고 추정한 반면, 주최 측은 100만 명이라고 주장했다. 참석 인원을 정확히 알려면 항공사진을 찍은 후 컴퓨터 판독을 하면 된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없으니 페르미 추정을 해 보자.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데, 시위대가 점유한 면적을 한 사람이 차지하는 면적으로 나눠 주면 그만이다.
한 사람이 차지하는 면적을 정하기는 쉽지 않다. 경찰은 서 있는 사람의 경우 3.3m²(1평)당 9∼10명, 앉은 사람의 경우 6명으로 셈한다고 한다. 대략 8명을 기준으로 하면 1명이 차지하는 공간은 0.41m²다. 이 숫자는 미국 저널리스트 허버트 제이컵스가 제시했던 군중 한 명당 점유 면적에 가깝다. 경찰 추산이 26만 명이므로 시위대 점유 면적이 10만 m² 정도였다는 말이다.
군중이 점유한 면적을 추정해 보자. 세종대로는 폭 100m 길이 600m의 옛 세종로와 폭 50m 길이 1100m의 옛 태평로 구간으로 나뉜다. 옛 태평로는 절반 정도인 600m만 점유한 것으로 하자. 모든 면적을 합치면 얼추 10만 m²가 된다. 경찰의 추정치는 여기서 나온 듯하다. 하지만 시위대는 을지로, 종로, 청계천과 여기저기 작은 길에도 가득 있었다. 이들의 수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앞에서 구한 인원의 20%는 될 거라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찰 추산에 근거하여 참석자는 31만 명이 된다.
촛불 집회의 군중 밀도는 경찰 기준치보다 높았다는 것이 많은 이의 증언이다. 록 콘서트처럼 사람들이 꽉 들어찬 경우는 1인당 0.23m²다. 실제 이보다는 클 테니, 평당 10명인 0.33m² 정도가 될 듯하다. 그러면 38만 명 정도 된다. 하지만 이것은 어느 한순간의 숫자다. 12일 본행사는 4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되었다. 이 동안 사람들이 시위 현장을 드나들었으므로 참석자가 앞의 추정치보다 클 것이다. 만약 참석자 절반이 모든 시간을 참석했고 나머지 절반이 3시간 정도 있었다고 가정하면 참석자는 57만 명 정도 된다. 가정에 따라 구체적 값이 변할 수는 있지만, 아무리 최소로 잡아도 26만 명보다는 훨씬 많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도시 인구 전체가 거리로 나온 것이다. 이들의 구호는 단 하나였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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