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소도시 로드. 군사용 드론 ‘헤론’ ‘서처’ 등으로 유명한 이스라엘 최대 방산(防産)업체 IAI가 있는 곳이다. 5월 25일 IAI를 방문한 기자가 정문 근처의 IAI 로고를 찍으려 하자 소총을 들고 경비를 서던 흑인 유태인이 큰 소리로 기자를 제지했다.
IAI 정문의 몸 수색은 국제공항보다 엄격했다. 취재도 쉽지 않았다. 보안 요원이 취재 일정 내내 감시했고 제품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려고 하면 바로 제지했다.
최근 상업용 드론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지만 세계 무인기 시장의 90%는 여전히 군사용 드론이 차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 군사용 드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나라로 평가받는다. 그 비결을 탐구하고자 한국 언론 최초로 이스라엘 양대 군사용 드론 업체인 IAI와 엘빗시스템은 물론 에어로센티널 에어로노틱스 등 4개 업체를 찾았다.
○ 무인기 기술력 세계 최고
2만 km² 남짓한 국토 면적에 인구는 800만 명도 안 되는 이스라엘이지만 유명한 드론 업체만 7, 8개에 달한다. 이스라엘 주식시장은 물론 미국 나스닥에도 상장된 IAI와 엘빗을 비롯해 에어로노틱스 블루버드 에어로센티널 콘트롭 엘모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정찰용 무인기, 공격용 무인기, 무인 수상 함정 등 거의 전 분야의 군사용 드론을 생산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회사인 IAI는 1953년 설립됐다. 군사용 드론 외에도 전투기, 민간 항공기, 미사일, 항공 전자 시스템 등 군수 분야를 총괄하는 국영 방산업체로 직원은 1만6000명, 연 매출은 34억4000만 달러(약 4조180억 원)다.
현재 IAI는 세계 50개국에 군사용 드론을 수출하고 있고 있으며 한국도 주요 수출 대상국이다. 한국은 1999년 IAI의 서처와 하피를, 올해 초에는 헤론을 도입했다. 가격이 만만치 않다. 서처 1대는 50억 원, 헤론은 100억 원이 넘는다. 올해 초 도입한 3대의 헤론은 현재 서해 5도 정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기자를 안내한 도론 호레시 IAI 아시아 마케팅 담당 임원은 “전 직원의 37.5%에 달하는 6000명이 기술자고 최근 7년간 연구개발(R&D)에만 12억 달러(약 1조4000억 원)를 투자했다”라며 “IAI가 세계적인 군사용 드론 업체로 거듭난 비결이 여기에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중과 해상에서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한국군이 정찰 및 요격 업무 등을 수행하려면 우리의 드론이 꼭 필요하다”라며 “조만간 북한 병사가 남한의 드론과 싸우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 끊임없는 전쟁이 드론 강국의 비결
IAI를 방문하기 하루 전인 5월 24일 텔아비브, 예루살렘에 이어 이스라엘 3대 도시인 하이파를 찾았다. 하이파에는 현재까지 개발된 전술 무인기 중 최고라는 평가를 듣는 ‘헤르메스 900’을 생산하는 이스라엘 최대 민간 방산업체 엘빗시스템이 있다. 민간 방산업체지만 엘빗시스템 역시 IAI와 마찬가지로 사진 및 비디오 촬영을 허용하지 않았다.
헤르메스 900은 길이 8.3m, 날개 길이 15m, 이륙 중량 1.1t의 제원에, 최고 속도 시속 220km의 성능을 지녔다. 최고 높이 9.14km 상공에서 최대 30시간을 비행할 수 있는 중(中)고도 장기 체공 드론이다. 육상과 해상의 동시 정찰이 가능하고 임무 전환이 쉬운 데다 미사일 발사 및 타격 플랫폼으로도 쓰일 수 있다. 이에 한국군이 올해 초 헤론을 도입했을 때 왜 7년 전 개발된 헤르메스 900 대신 20년 전 개발된 헤론을 도입했느냐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랜 태이버 엘빗시스템 아시아 비즈니스 부책임자는 “이스라엘이 무인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게 된 것은 주변 이슬람 국가와의 끝 모를 싸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1973년 10월 6일 욤키푸르(속죄의 날) 축제 때 이집트와 시리아의 기습 공격에 전쟁 초반 비틀거렸던 기억이 이스라엘의 무인기 개발을 촉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드론 업체들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상업용 무인기 생산에 집중하지만 이스라엘의 무인기 개발은 국토 방어 및 국민 생존과 직결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의 인건비가 매우 비싸 상업용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와 경쟁할 수 없다”라며 “대당 가격이 비싼 고성능 군사용 드론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지원도 한몫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1970년대부터 드론 업체를 직간접으로 지원해 왔고 때로는 직접 출자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도 드론 스타트업에 기술 인큐베이팅 명목으로 30만 달러(약 3억5000만 원)를 지원한다. 엘빗 역시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연 매출 28억8800만 달러(약 3조3731억 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 한국과 지형, 형세 공통점 많아
현재 이스라엘 드론 업체는 한국과 다양한 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무인기용 통신 장비, 비행체 공동 개발, 시장 공동 개척이 대표적이다. IAI만 해도 한국항공우주(KAI), 대한항공, KOMRAS, LIG 넥스원 등 여러 업체와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카본과는 합작회사를 설립해 수직이착륙 무인기를 개발 중이다.
이스라엘 바셀라우프 에어로센티널 최고경영자(41)는 “한국과 이스라엘은 군사 무인기 분야에서 협력할 공간이 많다”라고 강조했다. 평지 대신 크고 작은 산이 많아 고개 너머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근접 정찰용 무인기는 이스라엘이 세계 최고라는 것. 그는 “수십만 명이 지키는 한국 휴전선도 이제는 1000여 대의 무인기로 대체해야 한다”라며 “이때 정찰에 드는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오태영 KOTRA 텔아비브 무역관장은 “군사용 드론의 중심이 정찰용에서 공격용, 전투용으로 옮겨 가고 있다”라며 “한국 정부와 기업도 무인 전투기(UCAV)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래의 전쟁은 ‘사람 없는 전장’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큰데 200만 대군이 대치하는 한반도는 어느 지역보다도 군사용 드론의 수요가 크다고 덧붙였다.
아쉽게도 한국의 군사용 드론 기술력은 여전히 이스라엘, 미국 등 선두 국가와 격차가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1970년대부터 무인기 개발에 나섰지만 2001년 처음 개발해 배치한 군단급 전술 무인정찰기 RQ-101 송골매, 민간 업체 유콘시스템이 개발한 리모아이 006 정도가 한국형 무인기의 전부다. 대한항공이 개발해 조만간 실전 배치할 KUS-9는 사단급 무인정찰기여서 글로벌호크와 같은 고고도 정찰기, 무인 전투기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광준 건국대 교수(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는 “군사용 드론은 고성능 센서, 전자 항법 장치, 정밀 영상 기술, 고속 디지털 통신 기술 등 우주항공 핵심 기술과도 연관성이 크다”라며 “차세대 핵심 먹거리인 군사용 드론 시장에 ‘올인’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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