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변의 모든 소리를 다 들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과거 원시시대라면 몰라도 요즘처럼 주변의 다양한 소리에 노출된 현대인들이 모든 소리를 다 듣는다면 아마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귀로 소리를 듣게 되면 몇 가지 전달과정의 단계를 거치면서 인체 반응이 일어난다. 우선, 들은 소리에 대한 분석이 이뤄진다. 이 과정을 통해 소리에 감정 요소가 개입하게 되는데 이는 무의식 영역에 해당된다. 다음으로, 전달된 소리에 집중과 의미를 부여하며 최종적인 반응, 즉 의식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은 의식 영역에서 이뤄진다.
무의식 영역에서 우리는 의미 없는 소리나 듣지 않아도 되는 소음들을 차단한다. 예를 들면, 생활소음인 냉장고나 컴퓨터의 팬 돌아가는 소리, 형광등 소음이나 창가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 등이 차단돼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한 들을 수 없게 된다.
좀 더 예를 들어보자. 친구의 초대를 받아 새 옷으로 단장하고 집에 놀러갔는데 거실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때 창가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또렷이 들리는데, 이는 새 옷과 우산의 필요성이라는 의식 영역에서 집중과 의미가 부여됐기 때문이다. 다시 친구들과 재미나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는 빗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때는 첫 단계인 무의식 영역에서의 반응만 이루어지고, 그 다음 단계인 의식 영역에서의 반응이 차단됐기 때문이다. 집으로 귀가할 시간이 되고 비가 계속 온다면 우산을 빌려야 하기 때문에 그때는 다시 창가의 빗방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의식 영역에서 이뤄지는 집중과 의미 부여 반응을 통해 다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난청이 있을 때 동반되는 이명과 청각과민증 치료는 무의식 영역에서 일어나는 반응에서 의식 영역으로 넘어가는 단계를 차단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이명이나 청각과민증에 대한 막연한 공포나 부적절한 치료가 의식 영역에서 이뤄지는 집중과 의미부여 반응을 강화시킨다면? 증상이 악화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정확한 진단 없이 이명을 중풍이나 뇌출혈 등과 연관해 치료를 권하는 의료행위는 막연한 공포심을 조장하며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명과 청각과민증은 질환이 아니라 호전될 수 있는 증상이다. 감기에 걸리면 열이 나거나 기침을 하게 된다. 이때 감기는 질환이고 열과 기침은 감기질환으로 발현되는 증상이다. 소음성 난청이나 노인성 난청으로 이명이나 청각과민증이 생기는데 이때 소음성 난청과 노인성 난청은 질환이고 이명과 청각과민증은 원인 질환으로 발현되는 증상이다.
이명과 청각과민증 치료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원인질환을 알아내고 그에 따른 증상임을 반드시 환자 스스로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청에는 이명과 청각과민증이 흔하게 동반된다. 이는 난청으로 잘 들리지 않는 소리에 대해 과도한 집중력이 동원되고 과거 들었던 유사한 소리의 기억과 눈치까지 동원되면서 무의식 영역에서의 뇌의 활성도가 증대되어 정상적인 차단기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청력을 개선해 불필요한 소리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줄임으로써 무의식 영역에서의 소리차단 반응을 강화하는 것이 보청기 치료의 중요한 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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