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카메라 시장에 2016년은 가혹한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일본 구마모토 지진이 큰 영향을 주었다. 이곳은 반도체 기업이 많은 곳으로 유명한데, 소니 이미지 센서 공장도 여기에 있다. 지진으로 인해 센서 공급 차질이 빚어졌고 몇몇 카메라 제조사들은 출고 지연 또는 신제품 출시를 연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카메라 제조사들은 위기를 타개하고자 노력했으며, 다양한 제품과 기술을 선보이면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도 보여줬다.
올해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시기에 따라 달랐지만 거의 모든 제조사들은 앞다퉈 플래그십 라인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니콘과 캐논, 소니는 모두 35mm 필름 판형의 풀프레임 센서를 탑재한 카메라를 출시했으며, 핫셀블라드와 후지필름은 더 큰 중형(645) 이미지 센서를 품은 미러리스 카메라도 공개했다.
플래그십 카메라의 대격돌
2016년 대부분 디지털카메라는 일부 콤팩트 라인업을 제외하고 화소가 크게 증가했다. 화소 증가가 어려울 것이라던 올림푸스-파나소닉의 포서드(Fourthird)도 2,000만 화소를 돌파했으니, 렌즈교환식 카메라 대부분은 화소 증가를 통해 사진 품질 향상을 강조했다. 이보다 눈 여겨 볼 부분은 바로 각 브랜드에서 플래그십에 해당하는 카메라들을 올해 연이어 선보였다는 점이다.
포문을 연 것은 니콘이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 2016에 플래그십 카메라 D5와 D500을 동시에 출격시켰다. 지난 2014년에 선보였던 D4S의 뒤를 잇는 D5는 확장 감도 ISO 328만이라는 성능을 앞세워 시장에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또한 함께 선보인 D500은 2009년을 마지막으로 후속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D300S의 정통 후속 제품이다. 35mm 필름 환산 1.5배 초점거리를 제공하는 APS-C 규격 센서를 품었으며, 동급 최고 수준인 확장 감도 ISO 164만을 제공한다.
그 다음 차례는 후지필름이었다. 플래그십 미러리스 카메라인 엑스-프로(X-Pro)2를 1월 공개했다. 35mm 필름 환산 초점거리 1.5배 상당인 APS-C 규격 센서(2,400만)를 탑재했고 아크로스라는 이름의 필름 시뮬레이션 모드를 추가한 점이 돋보인다. 기존 특징들은 그대로 유지됐다.
당시 이다 토시히사 후지필름 일렉트로닉 이미징 코리아 대표는 “풀프레임은 100여년 전, 라이카가 만든 규격이다. 기술이 진화한 지금, 센서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기에 더 이상 과거 포맷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며 풀프레임 이미지 센서가 아닌 자사 APS-C 센서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표현했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참고로 후지필름은 중형 판형(645규격)에 조금씩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645는 120 필름 규격인데, 코닥이 개발한 것이다. 라이카보다 코닥이 더 좋았던 것 같다.
흥미롭게도 올림푸스는 두 개의 플래그십을 선보였다. 최근 공개했던 OM-D E-M1 M2와 지난 2월에 공개한 펜-에프(PEN-F)였다. PEN-F는 53년 전에 출시한 초창기 PEN 카메라를 최신 흐름에 맞춰 재해석한 특별판이었다. 최신 기술과 아날로그 감성의 조화가 돋보였다.
OM-D E-M1 M2도 올림푸스 플래그십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처음 2,000만 화소를 돌파했으며, 동체추적에서 초당 18매, 단일초점에서 초당 60매 촬영이 가능한 점을 내세웠다. 5축 손떨림 방지 기술은 5.5단계 셔터속도 보정까지 가능했다. 늦게나마 4K 동영상 촬영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다소 높은 가격이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늦었지만 캐논도 플래그십 전쟁에 뛰어들었다. 리우 올림픽을 겨냥한 D5를 견제하기 위한 EOS-1D X M2를 공개한 것. 4년 만에 등장한 최신 플래그십 카메라로 2,020만 화소 풀프레임 센서를 탑재해 최대 확장 감도 ISO 40만 9,600을 구현했다. 초점 성능이 강화되고 4K 동영상 기록을 지원한다. 특히 초당 60매 촬영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
펜탁스도 풀프레임 이미지 센서를 탑재한 렌즈교환식 카메라 K-1을 공개하며 플래그십 경쟁에 몸을 비볐다. 3,640만 화소와 최대 감도 ISO 20만 4,800 등 늦었지만 무난한 성능을 갖췄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렌즈 라인업과 초기 일부 렌즈에 대한 호환성이 부각된 바 있다.
마지막은 소니가 장식했다. A-마운트 플래그십으로 4년 만에 출시된 A99M2와 APS-C 규격 미러리스 플래그십 알파6500이 그 주인공이다.
A99M2는 4,240만 화소, A6500은 2,420만 화소 이미지 센서를 탑재했다. 두 카메라 모두 빠른 동체추적 성능과 연사 속도 등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4K 영상은 기본이고 전문가들이 편집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도 적용하며 영상 시장 진출까지 고려했다. 신제품 출시를 통해 소니는 기존 DSLT 라인업과 함께 A7이라는 풀프레임 미러리스, 소형 미러리스 카메라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렌즈를 강화하라
점점 높아지는 화소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한 렌즈의 재구성도 활발히 이뤄졌다. 캐논, 니콘, 소니 등은 과거 렌즈 일부를 최신 기술에 맞춰 재구성했다. 소니나 올림푸스는 전문가를 위한 고성능 라인업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기존 제3자 제조사(서드파티)들도 고화소를 위한 고성능 렌즈를 각각 선보였다.
두드러지는 곳은 소니와 삼양옵틱스다. 소니는 그 동안 독일 칼 자이스(Carl Zeiss)가 설계한 렌즈 라인업과 자사의 지 렌즈(G-Lens) 라인업을 따로 전개했었다. 하지만 성능에 대한 요구와 프리미엄 브랜드 가치 등을 고려해 지 렌즈보다 칼 자이스 렌즈 라인업이 압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A-마운트와 E-마운트, FE-마운트 모두 칼 자이스 렌즈가 전체 50% 가량을 차지할 정도.
그러나 소니는 지-마스터(G-Master) 렌즈를 2016년 초에 공개하며 색다른 행보를 이어나갔다. 현재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를 위한 FE-마운트 전용으로 전개되지만 향후 라인업을 어떻게 확대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국내 유일한 교환렌즈 제조사 삼양옵틱스는 경남 창원에 있는 생산공장을 신축 및 리노베이션을 마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황충현 삼양옵틱스 대표이사는 “우리는 전문 영상인을 위한 씬, 오토포커스 렌즈, 줌렌즈 등 고사양, 고품질 교환렌즈를 지속 연구개발하며 세계 시장으로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독일 칼 자이스나 일본의 시그마, 탐론과 같은 렌즈 전문 업체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더 큰 판형에 대한 욕망
디지털카메라 시장에는 다양한 판형이 존재한다. 그 중 일반 소비자들이 구매 가능한 가장 큰 판형을 꼽는다면 아마 35mm 필름에 준하는 풀프레임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뛰어 넘으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포착됐다. 일부 특화 제품군을 제외하고 35mm 필름 판형에 도전하는 카메라 제조사가 증가하는 가운데, 또 다른 곳에서는 이보다 더 큰 판형의 카메라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중형(645)이다.
중형은 645(6x4.5), 6x6, 6x7 등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디지털에서는 주로 645 포맷을 채택하고 있다. 가로 56mm, 세로 41.5mm 상당으로 35mm 필름의 가로 36mm, 세로 24mm 보다 넓은 면적을 제공한다는 점이 특징. 화소 집적도를 높이거나 관용도(다이내믹 레인지)를 넓힐 수 있다. 대신 가격이 높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가격을 낮춰 진입장벽을 낮추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핫셀블라드가 그 시작을 알렸다. 지난 6월에 공개한 X1D가 그 주인공인데, 미러리스 중형카메라로 5,000만 화소 이미지 센서를 탑재한 것이 돋보였다. 과거 중형 판형을 품은 카메라는 그 덩치가 어마어마했는데, X1D는 조금 많이 큰 미러리스 카메라 수준에 불과했다. 이 때 45mm f/3.5와 90mm f/3,2 렌즈 2종도 함께 공개된 바 있으며, 기존 핫셀블라드 렌즈도 어탭터를 통해 호환하도록 설계했다.
후지필름도 중형 미러리스 시스템 GFX를 공개했다. 핫셀블라드와 비슷한 5,140만 화소 이미지 센서를 품었고 새로운 G-마운트도 함께 공개하기도 했다. 이 카메라는 오는 2017년 상반기 중 출시할 예정이며, 카메라와 함께 후지논 GF렌즈 6종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렇게 35mm 이미지 센서 경쟁은 중형으로 점차 옮겨갈 분위기다. 아직 가격이 높지만 디지털화가 지속될수록 가격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경우, 카메라 제조사 수익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렌즈나 기타 액세서리 경쟁력 강화로 대신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결과적으로 우리들은 더 좋은 사진을 어디서든 기록할 수 있다. 축복인지 재앙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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