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지럼증이 심해져 어제는 억지로 세수하고 머리 빗고 앉아서 기다렸는데 마침내 차대(次對)를 거행하지 못했다. 아침 수라(水刺)도 오후에야 비로소 들었다.”
조선의 왕은 절대적 권력을 누렸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군신 간의 관계는 밀고 당기는 고도의 정치 드라마였다. 이 때문일까. 탕평책을 폈던 영조는 스트레스로 인한 여러 증상을 평생 안고 살았다. 소화불량, 식욕부진 등이 대표적이지만 어지럼증도 심했다. 승정원일기에만 영조의 어지럼증과 관련한 언급이 2867회나 나온다.
비록 어지럼증이 고통스럽긴 하지만 대부분 관리가 가능한 질환이다. 영조의 어지럼증을 다스리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된 처방은 자음건비탕(滋陰健脾湯). 당파싸움으로 받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기인한 처방이다. 자음은 여름 더위에 열이 오르고 힘이 없을 때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면 열이 내리고 생기가 생기듯 머리 쪽으로 쏠린 기를 진정시키고 내린다는 뜻. 또 건비는 비장을 강화시킨다는 뜻이다.
‘어릴 때 네 발로 걷고 젊어서는 두 발로 걸으며 늙어서는 세 발로 걷는 게 바로 인간’이라는 오이디푸스 신화의 구절에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와 함께 우리 몸의 평형기관에 대한 예리한 관찰이 들어가 있다. 평형기관은 어지럼증을 관장하는 신체기관으로, ‘인간이 늙어서 세 발로 걷는’ 이유는 노화로 인해 평형기능이 그만큼 쇠퇴했기 때문이다. 다리를 벌리고 불안하게 걷는 모습은 어지럼증의 또 다른 표현이다. 벼슬을 얻기도 물리기도 힘들었던 조선시대, 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나오는 신하의 사직 이유 중 절대다수는 어지럼증이었다.
어지럼증 환자는 여성이 다수이고 갱년기 여성에게 특히 많다. 최근 들어 빙빙 도는 이석증과, 메니에르병으로 생긴 어지럼증도 늘고 있다. 메니에르병은 주변이 빙빙 도는 것 같은 회전성 어지럼증과 귀울림, 귀의 폐색감, 난청이 있는 이명 등을 동반하는 무서운 질환이다. 한의학적 관점에서 세반고리관 등 우리 몸의 평형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은 흔히 지게에 물동이를 올려놓은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물동이가 흔들리면 출렁이면서 어지러워지는 것과 같다. 실제 메니에르병의 조직학적 병명은 특발성 내림프 수종(水腫). 수종은 신체기관에 수분이 편재해 생기는 것으로 한의학의 수분대사 장애인 수체(水滯)와 담음(痰飮) 증상과 유사하다.
그래서 빙빙 도는 어지럼증의 한의학적 치료는 편재된 수분을 치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다가오는 설 명절엔 과로와 스트레스로 어지럼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물은 차갑고 고여서 문제가 된다. 응급대처법은 배를 따뜻하게 데우는 것. 혹 여유가 된다면 따뜻한 생강차 한 잔을 마시는 게 도움이 된다. 더 좋은 방법은 부부가 서로 목과 어깨를 주물러서 긴장을 풀고 서로를 위로해 스트레스를 날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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