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의 실록한의학]왕의 정력제로도 사용된 ‘공진단’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3일 03시 00분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공진단은 탁월한 효능을 가진 한약이다. 몸이 허해 원기를 보충해야 할 때, 머리에 열이 올라 두통이 심할 때 특히 효험을 발휘한다. ‘동의보감’엔 공진단의 효능이 “타고난 원기를 든든하게 해 오장이 스스로 조화해 온갖 병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적혀 있다.

공진단은 원나라 명의 위역림(危亦林)이 사향, 녹용, 인삼, 산수유, 당귀 등을 배합해 황제에게 바친 약이다. 공진단의 치료 목적은 찬 기운은 위로 올리고 열은 아래로 내리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이다. 한의학은 몸의 균형을 중요시한다. 그중에서도 음양오행으로 따져 불에 해당하는 심장과 물에 해당하는 신장 사이의 균형을 으뜸으로 친다.

심장과 신장의 균형이 깨지면 상열하한(上熱下寒) 증상이 나타난다. 얼굴은 화끈화끈 열이 오르고 배와 팔다리는 차가워진다. 이는 만병의 근원이다. 명종, 성종 등 조선의 많은 왕이 이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공진단은 심장의 열기는 식혀 아래로 내리고 신장의 차가운 음기는 데워 위로 올려 깨진 균형을 회복시킨다. 양기가 머리로 지나치게 몰리는 것을 막고 에너지를 신장에 보충해 주도록 고안된 약이다.



공진단을 수시로 복용한 조선의 대표적 왕은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 경종이다. 경종은 세자 때부터 갖은 수난을 겪고 32세에 왕위에 올랐지만 재위 4년간 병치레만 하다 생을 마쳤다. 즉위년에 이르러서도 자식이 없자 어의들은 이를 하초(下焦)의 원기 부족이라고 진단하고 공진단을 처방했다. 어의들은 “종사의 경사를 위해서”라고 전제한 뒤 “선조로부터의 경험”이라는 추천사를 더했다.

33세에 승하한 강화도령 철종도 정력 향상을 위해 공진단을 복용했다. 정신적 압박과 세도정치로 인한 스트레스로 평생 소화불량에 시달렸지만 그가 정작 가장 자주 복용한 건 강장 처방이 대부분이다. 종마처럼 혈통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왕가의 슬픈 이면이다.

반면 정조와 순조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공진단을 상복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화병을 심하게 앓아 공진단을 여러 번 복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순조 또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생긴 화병과 소화불량을 다스리기 위해 공진단을 먹었다. 공진단의 원래 처방명은 보간환(補肝丸)으로 간의 기능을 보충한다는 뜻이다. 한방에선 갱년기 또한 간이 약해져서 생기는 질환으로 파악하는데 공진단을 숙취 해소와 여성의 갱년기 치료에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서제(서臍)’라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 잡히면 자기 배꼽(사향)을 물어뜯는 사향노루의 습속에서 유래됐다.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원인이 자신의 귀한 배꼽 때문임을 뒤늦게 알고 물어뜯어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는 의미다. 돈, 권력 등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그제야 사향이 들어간 공진단 같은 귀한 약재도 아무 소용이 없다. 공진단을 수시로 복용한 경종이 37세, 철종이 33세에 세상을 뜬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한번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 건강할 땐 아무것도 아닌 음식도 독이 된다. 늘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예방하는 게 최선의 건강법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공진단#숙종#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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