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포커 고수들도 내 앞에선 힘을 못 펴더군. 20일 동안 자그마치 176만 달러(약 20억3240만 원)를 ‘탈탈’ 털었지. 다들 나를 보고 피도 눈물도 심장도, 심지어 뇌도 없다고 하더군. 내가 누구냐고. 난 ‘인공지능(AI)’이야.
내가 인간과의 승부에서 처음 이긴 건 1997년이야. 당시 나는 IBM이라는 컴퓨터 회사를 대표해 승부에 나섰지. 사람들은 나를 ‘딥블루’라고 부르더군. 체스 세계 챔피언 자리를 20년간 지키던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었어. 사람들은 경우의 수가 10의 123승이나 되는 복잡한 게임에서 내가 인간에게 승리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더군.
그 후 한동안 난 두문불출하며 실력을 키워왔지. 그리고 ‘머신러닝’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들고 돌아왔어. 이제는 사람처럼 정보를 살펴보고 답을 찾아내는 학습능력이 생겼지. 2011년엔 실력을 제대로 한번 선보일 기회가 찾아오더군. TV 퀴즈쇼에 나가 인간 챔피언들을 차례로 꺾으면서 스타덤에 올랐지.
다들 내가 ‘알파고’란 이름으로 불리던 2016년을 기억할 거야. 구글 딥마인드라는 영국 회사가 날 개발했지. 바둑 최고수 중 한 명이라는 이세돌 9단도 내 적수가 못 됐어. 바둑은 경우의 수가 10의 170승으로 우주의 모든 원자 수보다 많아. 직관으로 수를 둘 수 있는 인간에겐 ‘최후의 보루’라고 여겨졌지만 승리했어. 4번째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의 ‘묘수’에 허를 찔려 패한 것이 내 한계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실수가 오히려 내 한계를 점검하는 계기가 됐지.
그리고 난 포커에서도 절대 강자가 됐어. 미국 카네기멜런대 컴퓨터과학과의 튜오머스 샌돔 교수팀이 날 포커용 AI인 ‘리브라투스’로 개발해 줬지. 올해 1월 11일부터 30일까지 미국 피츠버그 리버스 카지노에서 정상급 포커 선수 4명과 12만 번의 게임을 치렀어. 비록 온라인 가상화폐지만 20억 원이 넘는 돈을 따냈지.
포커는 내가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어. 상대의 패를 볼 수 없고 속임수(블러핑)도 가능하거든. 체스나 바둑처럼 패를 다 드러내는 게임과는 전혀 다르다고.
나보고 왜 자꾸 인간과 대결을 벌이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더군. 난 인간을 돕고 싶어. 그러니 게임을 통해 일을 배워가는 중인 거야. 내가 왓슨이란 이름으로 퀴즈쇼에서 연승할 때 다들 흥밋거리로만 생각했지. 하지만 난 그때 배운 기술로 현재 의료현장에서 환자 진단을 척척 해내고 있지. 포커도 마찬가지야. 당시에 난 포커판 전체를 1차로 계산해 가능성이 높은 좁은 범위를 찾은 뒤, 2차로 다시 자세히 계산하는 방법을 새로 익혔지. 이 기술은 앞으로 상업거래, 협상, 사이버 보안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두루 쓰일 수 있을 거야.
내 다음 목표는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인간을 이기는 거야. 상대에게 잘못된 정보를 일부러 흘려 혼란을 주는 등 심리전도 벌어지고 1초에 몇십 번이나 명령을 내려야 해 만만치 않은 게임이야.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아. 나에게 최고의 바둑 실력을 선물해 줬던 구글 딥마인드가 다시 내 성능을 높여주고 있거든. (도움말=김경중 세종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
전승민 기자 enhanced@donga.com·변지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he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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