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의 실록한의학]고종, 승하 당일에도 불면증 약 복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7일 03시 00분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고종은 명성황후의 영향을 받아 올빼미 생활을 했다. 명성황후는 오빠였던 민승호가 폭탄 테러로 사망하자 두려움으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왕실의 관행을 어길 정도였으니 고종에 대한 명성황후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고종은 생활리듬이 깨진 탓에 명성황후 사후에도 불면증에 시달렸다.

고종이 승하한 당일 점심때 복용한 약물은 불면증 치료제 온담탕이다. 온담탕의 대표 약물은 반하(半夏)다. 반하는 속이 더운 까닭에 보리밭 사이에 숨어 태양을 피해 성장하고 보리농사가 끝나 쟁기질할 때 캐내어진다. 속이 더운 식물이 어떻게 잠을 잘 오게 할까. 그 답은 이름에 담겨 있다. 하지까지 완전히 펼쳐져 있던 잎은 그 이후에 절반으로 준다. 양의 기운을 줄여 음으로 보내는 오묘한 특성이 있다. 이런 약리 작용을 도양입음(導陽入陰)이라고 하는데 양을 이끌어 음을 활달하게 한다는 뜻이다.

현대 의학의 시각으로 보면 교감신경의 흥분을 잠재우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잠이 오게 하는 것. 잠을 막는 원인 중 으뜸은 스트레스로, 교감신경을 흥분시킨다. 교감신경이 흥분되면 몸은 열을 받아 혈압이 오르고 위가 아프며 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양기가 넘치고 음기가 줄어 불면의 상태로 돌입한다. 커피, 콜라 등에 든 카페인도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므로 스트레스와 다를 바 없다. 갱년기, 갑상샘(선) 질환, 당뇨병, 협심증도 음기를 소진해 불면증을 만드는 원흉이다.

온담탕 안에 든 또 하나의 불면증 치료약제는 산조인(酸棗仁)이다. 드라마 ‘대장금’에도 나온 유명한 약물이다. 장금이 수청을 들라는 중국 사신을 잠들게 한 약재다. 대추보다는 작고 빡빡하게 많이 자란다. 산조인의 신맛(酸)은 수렴하는 성질(음기)로 양기를 수렴해 잠을 부른다. 동의보감이 신맛의 사과를 먹으면 잠이 잘 온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해가 뜨는 낮에 움직이고 달이 뜨는 밤에는 잠을 자야 한다. 태양은 밝은 양기를 주관하며 달은 어둡고 서늘한 음기를 주관한다. 잠은 음기가 성할 때 잘 오고 음기가 줄면 달아난다. 상추를 먹으면 잠이 오는 일이 흔한데 상추는 원래 음기의 상징이다. 양기의 상징인 맵고 뜨거운 고추의 반대편인 만큼 쓰고 시원한 맛의 상추는 음기를 보충한다. 음기가 강한 만큼 성질이 차서 소화력이 떨어진 사람이 먹으면 설사를 한다.

그렇다면 머리로 오른 양기를 내리고 음기를 보충해 잠을 청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없을까. 일단 하루 한 시간씩 걸어볼 것을 권한다. 다리는 음기의 저장 창고다. 천천히 걷는 것은 뇌에 집중된 기운을 발로 내린다. 다리를 움직이면 피가 다리 근육에 몰리면서 음기가 배양된다. 천천히 숨을 내쉬는 호흡법도 도움이 된다. 들이마시는 숨은 교감신경, 가늘고 길게 내쉬는 숨은 부교감신경의 영역이다. 천천히 숨쉬기를 반복하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잠이 온다. 족욕이나 가벼운 샤워도 긴장된 신경을 이완시켜 수면에 도움이 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고종#불면증#올빼미 생활#온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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