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몇 년째 고생을 하고 있는 지병이 있다. 어깨의 힘줄 사이가 굳어져 통증이 생기는 것인데, 오랫동안 방치하다가 상태가 굉장히 심각해졌다. ‘무릇 21세기 직장인이라면 이 정도 뻐근함은 어깨에 하나씩 달고 다니는 것’이라며 안일하게 내버려둔 것이 화근이었다. 더 이상 고통을 참기 어렵다 싶을 때 병원을 찾아갔지만, 이미 병이 너무 커진 후였다.
직장을 다니며 하루 몇 시간을 치료에 투자하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몸이 아프고 보니 내 몸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의사가 하는 작은 말 한마디에도 종교처럼 의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수개월 동안 의심 없이 병원을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세는 전혀 차도가 없었고, 답답한 마음에 남편이 의사에게 언제쯤 나을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제야 의사는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으라고 말했다. 아직 젊은 나이고 이렇게 전신마취를 하는 큰 수술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터라 수술 이야기를 듣고서는 가슴이 철렁했다. 왜 진작 큰 병원으로 가라고 제안하지 않았는지도 의아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의사가 수술을 해야 나을 수 있다고 하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자고로 병은 소문을 내야 낫는다더니, 그러고 나서 주변에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니 모두 입을 모아 수술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여러 병원에 가서 많은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보라고 권유를 하는 것이 아닌가. 같은 병을 두고서도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이 있고 수술은 회복하는 데 부담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피하라는 조언도 공통적으로 들었다. 요즘은 병원도 다 장삿속이라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렇게 귀동냥으로 용하다는 병원 몇 군데도 추천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수술 상담을 받으러 몇 군데의 병원을 돌아다니며 희한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쩔쩔 매며 병원을 찾아왔는데 이 정도는 별것 아니라는 듯 3분도 채 안 되는 진료시간 동안 굉장히 건조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수술해야 한다, 비용과 날짜는 나가서 상담실장과 논의하시라”는 말만 듣다가 나오기도 했고, “수술을 하면 더 위험해질 수 있고 우선 간단한 시술을 해보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쯤 되자 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완치가 가능하다는 의사와, 반드시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 수술을 하면 오히려 위험하다는 의사 사이에서 나는 환자로서 치료 방식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내 몸에 대한 결정권만 가지고 있지 의학적인 소견은 전적으로 의사들에게 들어야만 했고, 그래서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전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의사는 나에게 종교처럼 믿는 존재였는데 그 절대자가 하루아침에 하나도 절대적이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간단한 시술을 먼저 받기로 했다. 시술 후에도 차도가 없다면 그때 가서 수술을 받아도 늦지 않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는 내가 겪은 일련의 경험에 대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차도가 없는데도 계속 의미 없는 치료를 몇 달간 반복한 첫 번째 병원과,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무턱대고 다짜고짜 수술을 강권하는 병원에 대해 적잖이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주변의 조언이 없었다면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서 군말 없이 따랐을지도 모른다.
분명 그 병원의 의사들도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서 그러한 치료를 권했으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에게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미심쩍은 기분만 남겨준 것은 의사로서의 책임에 소홀했다고 생각한다. 의료 산업도 이제 서비스의 영역이라 이 집 저 집을 비교해 환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서 소비해야 하는 것일까. 여러모로 ‘아프면 나만 손해’라는 옛말이 사무치는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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