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빛나는 애민 정신과 위대한 업적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평생 각종 질병으로 고통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심어진 세종대왕의 이미지는 날씬하고 잘생긴 인물. 하지만 실제 그는 아버지 태종이 ‘비중(肥重)’이라고 말할 정도로 살찐 체형이었다. 세종은 즉위 4년째부터 허손병, 즉 극심한 과로 증상에 시달렸다. 7년째는 관을 짜 둘 정도로 증상이 악화돼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세종실록에는 그가 앓았던 질병명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풍질, 풍습, 안질, 소갈, 임질, 종기가 대표적이다. 그중 풍질과 풍습은 가장 큰 고통을 호소한 질환. 풍질, 풍습은 관절 질환의 일종이다. 세종 21년 “내가 비록 앓는 병은 없으나 젊을 때부터 근력이 미약하고 또 풍질로 서무를 보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또 ‘일찍부터 다리를 절고 다닐 정도로 불편했다’는 기록으로 미뤄 보면 천장 관절염(고관절염과 유사)을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 17년의 기록엔 전형적인 강직성 척추염도 보인다. “지금 등이 굳고 꼿꼿해 굽혔다 폈다 하기가 어렵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는 이런 증상 때문에 중국 사신의 전별연에도 불참했다. 재위 24년엔 희귀성 질환인 ‘동신언어(動身言語)’ 증상으로 괴로워한다. 말하거나 움직이면 찌르는 듯이 아파 “3일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조리하겠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소갈증(당뇨병)도 심했다. 세종 21년에는 “하루에 마시는 물이 어찌 한 동이만 되겠는가”라고 말할 정도였다. 문서를 오래 보는 것을 힘들게 했던 잦은 눈병(안질)도 그 합병증이었다.
세종 24년에는 “온정(溫井)에서 목욕한 이후 눈병이 더욱 심해졌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경기 이천과 충남 온양(아산) 등 온천을 찾았지만 안질은 더욱 심해져 거의 시력을 잃다시피 했다.
실록상의 ‘임질’ 기록을 보고 깜짝 놀랐겠지만 현대적 질환인 감염성 성병과는 다른 질병이다. 동의보감에 나온 임질은 “심신의 기운이 하초에 몰려 오줌길이 꽉 막혀 까무러치거나 찔끔찔끔 그치지 않는 증상”이다. 신장과 방광이 허약해 소변보기가 불편한 전립샘 질환 정도였다. 재위 7년 조선을 찾은 중국 의원 하양은 세종을 진찰한 뒤 왕의 질병에 대해 “전하의 병환은 상부는 성하고 하부는 허한 데서 비롯됐는데, 이는 정신적 과로에 의해 생긴 것”이라 말하면서 화(火)를 없애는 향사칠기탕과 양격도담탕을 처방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과로와 스트레스로 생긴 병이다.
누가 더 오랜 시간 쉬지 않고 공부하는지 내기를 벌이다 잠든 신숙주의 어깨 위에 용포를 걸쳐 준 미담의 경우 의학적 관점으로 보면 신체에 대한 자학의 역사다. ‘위대한 정신’을 가진 이라고 질병이 피해 가지는 않는다.
질병은 정신과 육체 모두의 문제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왕도는 운동과 음식으로 몸을 추스르고 스트레스를 제거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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