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면 언급되는 과학자가 있다. 바로 레이철 카슨(1907∼1964)이다. 그녀의 ‘침묵의 봄’은 DDT의 문제점을 고발한 역작이다. 1962년 이 책은 미국 정부의 환경 정책에 파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된다. ‘침묵의 봄’은 앞으로 더욱 주목받게 될 명저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봄의 소리는 갈수록 더 들리지 않고 각종 오염물질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DDT의 문제점은 야생 동식물에게 2차적인 피해를 입힌다는 데 있다. 숲이 흠뻑 젖을 정도로 살포된 DDT는 물고기와 새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카슨은 정말로 필요한 과학과 경제적 이득을 위한 과학을 경계하려고 했다. 적당량을 선택적으로 뿌려도 되는 살충제를 마구잡이로 살포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 당시 카슨은 농약제조업체와 화학업계로부터 끝없는 위협을 받았다.
염소화 탄화수소 분자인 DDT는 합성 살충제로서 가장 많이 사용돼 왔다. 그러나 DDT의 효용성(말라리아 퇴치)과 부작용(호르몬 교란)의 논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침묵의 봄’은 ‘내일을 위한 우화’로 시작해서 ‘가지 않은 길’로 끝난다. 문학적인 수사가 눈에 띈다. 각 장은 살충제와 화학물질, 물과 토양, 식물과 동물, 암 유발물질, 인간과 지구 등 생태철학과 환경윤리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 가운데 생태학적 대안으로서 선택적 살포, 자연감퇴(방제), 즉 유인물질이나 미생물, 천적을 이용한 방제와 곤충과 생물의 제한적 식성 활용법 등을 강조한다.
최근 일주일 동안 부산 오륙도부터 강원 고성까지 해파랑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카슨을 떠올렸다. 미세먼지 없는 따뜻한 봄바람을 맞으며 온 주변이 바다라는 걸 알게 됐다. 특히 간절곶과 호미곶을 지나며 주상절리를 만났다. 주상절리는 긴 기둥 모양의 갈라진 암석을 뜻한다. 걷는 곳곳에서 바다의 예술적 경지가 느껴진다. 끝없이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자연 속의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실감했다.
카슨은 사실 바다를 사랑한 문학소녀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새와 물고기를 관찰하고 어머니와 함께 해변을 거니는 것을 좋아했다. 카슨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물의 세계, 즉 바다라고 간주했다. 대륙은 잠시 바다의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땅덩어리라는 것이다.
1941년 카슨은 그녀의 첫 번째 책 ‘바닷바람을 맞으며(Under the Sea-Wind)’를 선보였다. 이 책에서 카슨은 바다의 다양한 장소를 묘사하고 바닷새(도요새), 고등어나 뱀장어, 연어 등 해양동물들의 생활사를 서정적으로 담아냈다. 각각의 생명체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물론 생태학적인 관찰도 빠지지 않았다. 카슨의 관심은 이주하는 동물과, 생물의 다양성 및 취약함이었다.
1951년엔 카슨의 두 번째 책 ‘우리를 둘러싼 바다(The Sea Around Us)’가 출간돼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이 책은 해양 자연사를 다룬다. 바람의 순환, 밀물과 썰물, 지구의 자전, 파도의 파장과 파고 등 바다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독자를 사로잡는다. 예를 들어 태양은 달보다 2700만 배 무겁다. 그러나 달은 태양보다 지구와 더욱 가깝다. 이로 인해 태양보다 두 배 이상 지구에 영향을 끼친다. 달과 지구의 거리가 현재보다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대양에 미치는 힘은 8배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이 책은 섬이 어떻게 탄생하고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떤 재앙을 가져왔는지 고발한다.
1955년에 ‘바다의 가장자리(The Edge of the Sea)’가 세상에 나온다. 이 책은 미국 동부의 대서양 해안에서 해안의 지질과 파도의 세기, 해류의 영향을 받는 동물들의 삶을 다룬다. 이로써 카슨은 바다 3부작을 완성한다. 카슨은 바다로부터 탄생한 한 생명(인간)이 어떻게 바다를 위협하는지 우려했다. 바다는 오염되더라도 영속한다. 하지만 바다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생명은 위험에 빠진다.
카슨은 자연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정복하자고 주장했다. 생명은 우주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만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환경과 분리된 독립체가 아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저 멀리 바닷가에서 들리는 듯하다.
댓글 0